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그제 재벌 총수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비례대표 5선 김 대표의 오랜 브랜드인 경제민주화를 법제화하는 첫걸음으로 더민주당 의원 107명,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 등 여야 의원 121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김 대표는 직접 쓴 제안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집단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고 경제민주화를 통한 ‘포용적 성장’이 시대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인 다중대표소송제는 총수가 계열사까지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모회사 지분을 1% 이상 가진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의 위법행위를 견제하는 소송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주주의 영향을 덜 받는 독립적인 이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뽑는 이사 수만큼 주식 1주에 의결권을 주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5명의 이사를 뽑는다면 주식 1주에 5표를 줘 소액주주들이 원하는 사람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또 주총에서 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대신 선임 단계부터 이사와 분리해 대주주의 입김을 막도록 했다.
이 내용들은 2012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후보가 공약했고 2013년 법무부가 내놓은 상법 개정안과 사실상 동일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2013년 8월 1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난 뒤 독소조항이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뒤 개정 작업은 흐지부지됐다. 당시 재계는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에 빠지는 등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지고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물 건너간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상법은 모든 기업에 적용되기 때문에 잘못 고치면 살릴 기업을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된다. 법안 중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중 1명을 선임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문제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월부터 도입하려는 근로자 이사제와 다를 바 없다. 오래전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한 독일 등에서도 논란을 빚고 있는 제도를 경영환경과 노사관계가 판이한 한국에 깊은 고려 없이 도입하는 것은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황제 경영’이 낳은 롯데그룹의 비리 의혹과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는 총수나 대주주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는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브렉시트는 세계화와 경제성장 과실이 상위 계층에만 집중된 데 대한 대중의 분노가 도화선이었다. 김종인의 상법 개정안을 무시해선 안 되는 이유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라도 법안 통과를 위해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