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정치부 차장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속된 말로 배우처럼 얼굴을 뜯어먹고 살지는 않지만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건 정치권의 불문율이다. 하물며 대권에 도전한다면 더욱 그렇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민주화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와 동일시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청계천 복원이 따라다녔다. 그렇다면 야권의 대선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에게는 지금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일까.
솔직히 두 정치인이 갖고 있는 이야기보따리는 거의 비어 있다.
2011년 지지율이 자신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박원순 씨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안 전 대표는 곧바로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대선에 나온 그를 두고 ‘메시아가 나타나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대선 패배로 자신의 스토리를 소진했고, 안 전 대표는 2014년 민주당(현 더민주당)과의 통합으로 사실상 ‘현상’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이후 두 사람이 새로 쓰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다. 방법은 강경함과 단호함이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을 흔들어대는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끝내 당 밖으로 몰아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삼고초려해 총선 승리를 이뤄냈지만 김 대표에게 당을 더 오래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안 전 대표는 혁신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문 전 대표와 건곤일척의 쟁투를 벌였다. 새로운 당을 만들고, 김한길 전 의원의 야권통합 시도는 단칼에 잘라냈다. 총선 리베이트 의혹 사건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내놓는 강수를 던졌다. ‘또 철수’라는 평은 별로 없었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