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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브렉시트의 교훈은 ‘트럼프 아웃’

입력 | 2016-07-06 03:00:00

정치인의 개인적 거짓말보다 국가 장래를 농락하는 거짓을 가려내야
경제문제 정면 돌파하지 않고 이민자를 희생양 만드는
쉬운 길 택한 영국 정치인들
조금만 따져보면 거짓 드러나는 트럼프에 환호하는 미국인




황호택 논설주간

“보리스 존슨이 파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지만 파티가 끝나고 당신을 집에 데려다줄 사람은 아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진행된 TV토론에서 앰버 러드 에너지장관(여)이 존슨 전 런던시장을 아프게 찌른 말이다. 브렉시트 파티에서 존슨은 좌절하고 분노한 영국인들에게 ‘매력남(男)’으로 비쳤지만 파티가 끝난 후 영국인의 안전 귀가를 보장해 줄 ‘책임남’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며 총리 후보 1순위였던 존슨은 국민투표 후 브렉시트의 충격파가 영국과 세계를 흔들어놓자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바꾸다가 종내 총리의 꿈을 접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나 영국의 브렉시트에는 이민자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감이 짙게 깔려 있다. 영국 노동자들은 이민자의 쇄도로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임금이 떨어지고 집세가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이민자가 몰려오면서 세금으로 운영해 대부분의 진료가 무료인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취학 아동의 급증으로 자녀를 제때 학교에 보내기도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인들은 복지, 주택, 교육정책의 실패를 바로잡는 정면 돌파보다는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반(反)이민 정서에 영합하는 쉬운 길을 택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같은 고립주의나 트럼프 식으로 국경에 담을 쌓는다고 해서 세계화에 따른 난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민자 유입 없이는 영국 경제가 더 쇠락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정치인들은 거짓말과 과장을 뒤섞어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국민을 현혹했다. 4일 전격 사퇴한 영국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전 대표는 “영국이 EU에 매주 분담금으로 내는 3억5000만 파운드(약 5500억 원)를 NHS에 지원하자”고 말했다. 패라지는 국민투표가 끝난 뒤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그렇게 말하는 BBC 영상을 언론이 확인 보도했다. 3억5000만 파운드도 과장된 숫자다. 실제 영국이 EU에 내고 보조금 등을 통해 돌려받지 못하는 돈은 1억5000만 파운드.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직종은 단연 정치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두 거짓말을 했다.

트럼프는 거짓말을 해도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의 허풍쟁이다.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길까 봐 두려움에 떠는 백인 저숙련 노동자들의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한 공약이 대표적인 거짓이다. 그가 멕시코가 내는 돈으로 장벽을 세우겠다고 사자후를 터뜨릴 때마다 청중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수십억 달러가 드는 장벽 설치비용을 멕시코가 지불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 기업들에 몰려올 파장에도 관심이 없다.

힐러리는 국무장관(2009∼2013년) 때 보안이 안 되는 개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하면서 국가기밀이 포함된 업무 관련 메일을 주고받은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녀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솔직히 시인하지 않고 “편의상 하나의 이메일만 사용했는데, 돌아보면 두 개의 이메일을 사용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로 교묘히 빠져나가려 들었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거짓말 중에서 어떤 게 더 악성이고, 미국 유권자들은 누굴 찍어야 할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정치에서 모든 거짓말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힐러리의 이메일 둘러대기는 국민의 지능지수를 테스트하는 것 같은 불쾌감을 준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거짓말을 하는 힐러리가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사안을 놓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논리다.

트럼프는 스코틀랜드에서 새로 문을 연 자신의 골프장 개장식에 참석해 “브렉시트로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영국인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해 비난을 샀다. 이웃 국가의 불행을 이용해 골프장 홍보를 하는 천격(賤格)의 인물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미국인들에게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면 그나마 국제사회의 행운이라고 하겠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