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동종.
첩첩의 산을 넘어
상원上院에 선다
어두워져가는 고원,
희미해져가는 몇 개의 불빛과
눈발을 만나 악수를 나눈다
오래 헤어졌던
길고 긴 강물처럼 울려나오는 동종 소리에
몸을 싣고
잘못했다
아름다운 고통이었다
몸을 구부려 또 빌고 빌었다
악기를 타는 비천飛天의 보살이여
천 개의 손을 보여다오
화엄으로 돌아가는
서른다섯 개의 젖꼭지여
어지러운 꿈속에 젖을 물려다오
발등에 먼지가 고여 수레처럼 쌓일지라도
상원의 동종이여
소리여
일 개個 만 개個의
파문이여
언제 우는가. 아니 언제 한 번 천둥같이 백두대간을 온몸으로 흔들며 지구촌 하늘을 울리려는가. 한국은 세계가 ‘코리안 벨’이라 이름 지을 만큼 인류 으뜸의 종(鐘)의 나라. 불국 융성 더불어 큰 산 높은 절마다 크고 작은 범종을 지어왔거니, 그 가운데도 에밀레종이라 부르는 ‘성덕대왕신종’보다도 46년이나 앞선 성덕왕 24년(725년) 주성된 이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국보 36호)’이 가장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범종은 불기 중에서도 대표적인 조형물이며 이러한 조각 양식은 8세기 전반, 극락왕생을 구현하는 신라인의 기원을 담고 있다.
‘영가지(永嘉誌)’에는 1469년 안동 누각에 있던 종을 상원사에 옮겼다고 하는데, 까닭인즉 세조가 승하하자 아들 예종이 아버지와 인연이 깊던 상원사를 원찰로 삼고 봉안할 종을 전국에 수소문하여 모셔왔다는데 그때 죽령을 넘을 때 종이 움직이지 않아서 유두 하나를 떼어내자 움직였다고 한다.
시인은 ‘악기를 타는 비천의 보살이여/천 개의 손을 보여다오’라고 했는데 오래 참아온 저 용의 울음은 통일의 새벽에나 터뜨리려는가.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