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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더 좋은 쥐덫’에 걸린 한국

입력 | 2016-07-09 03:00:00


랠프 월도 에머슨은 19세기 중반 미국이 공업사회로 진입하던 시기에 활약한 시인이다. 그가 언급했다는 ‘더 좋은 쥐덫’은 혁신의 힘을 상징하는 은유로 널리 쓰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며 “어떤 시인의 유명한 글귀가 있다”면서 “‘더 좋은 쥐덫’을 만든다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취지로 에머슨의 시를 언급했다. 에머슨이 1882년 죽기 전에 실제로 ‘더 좋은 쥐덫’을 언급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상용 쥐덫은 그가 죽은 뒤에 사용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미국의 울워스라는 쥐덫 회사는 한번 걸린 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 예쁜 모양의 플라스틱 쥐덫을 만들어 발전시켰다”라고 덧붙인 말이 화근이었다. 미국에선 에머슨이 했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발명가들이 앞다퉈 쥐덫을 개량하는 바람에 쥐덫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특허가 나온 상품이 됐다. 그중 대부분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실패한 혁신이었다. 그 예쁜 쥐덫도 쥐와 함께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쥐만 버리고 씻어 쓰기는 찝찝한 상품이 되고 말았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더 좋은 쥐덫의 오류’라고 부른다.

▷많은 언론이 박 대통령의 잘못된 인용을 조롱했다. 실은 조롱한 언론도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예쁜 쥐덫을 만든 것은 울워스사가 아니라 1928년 미국 동물트랩사(Animal Trap Co. of America)의 체스터 M 울워스 사장이다. 오늘날 생활용품 업체 울워스(Woolworth)사가 쥐덫을 만들긴 하지만 울워스 사장은 울워스사와는 관련이 없다.

▷LG CNS의 홍보 사이트에는 ‘더 좋은 쥐덫의 오류’를 설명한 글이 올라와 있었는데 거기에는 울워스사의 체스터 울워스 사장이라고 돼 있다. LG CNS는 현재 이 글을 삭제했다. 삭제 이유가 대통령을 곤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 오류가 있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대통령도 틀리고 LG CNS도 틀리고 언론도 틀렸다. 모두 다 잘 모르는 걸 아는 체하다 보니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