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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대기자의 人]“불꽃을 관광자원으로… 광안리도 불꽃 덕에 살아났다”

입력 | 2016-07-09 03:00:00

‘불꽃 마이스터’ 손무열 한화그룹 상무




불꽃공연에도 요즘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한국의 불꽃산업을 이끌고 있는 손무열 한화그룹 상무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그가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 23층의 불꽃프로모션사업팀 사무실에서 하늘로 쏘아 올려 터지는 12인치 타상불꽃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심규선 대기자

여름, 불꽃놀이의 계절이다(불꽃놀이를 ‘여름의 풍물시’라고 하나, 요즘은 연중 쏘아 올리니 이 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의 불꽃 전문가를 만나고 싶었다. 의외로 쉽게 찾았다. 누구나 한화그룹 불꽃프로모션사업팀 손무열 상무(58)를 꼽으니.

-불꽃사업이 그룹에서 그리 인기가 있는 건 아니었을 텐데….

“1983년 7월 그룹공채로 입사했는데 두 달쯤 있다가 인천공장 연화팀에 배속됐다. 마이너부서여서 공채 출신은 오래 못 버티고 나갔다. 원래는 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팔자로 생각한 일이 벌써 33년. 옛날 불꽃에는 연기(煙)와 불(火)밖에 없어 ‘연화’라고 했으나 요즘은 색깔, 모양, 소리까지 다양해져 ‘불꽃’이라는 말을 쓴다. 그는 개발, 생산, 디자인, 발사, 사업 등 불꽃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를 ‘불꽃마이스터’로 부르기로 했다. 지금은 팀원 21명과 함께 국내 200개 정도의 불꽃놀이 중 100여 개에 관여하고 있다. 규모가 큰 쪽으로.

우리나라 불꽃은 고려 말 시작→조선 중기 이후 중단→대한제국 말기 근대화(일본인)→일제강점기 성행→광복 후 주춤하는 과정을 거쳐 한화가 1964년 불꽃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한화의 자부심은 역시 2000년부터 여의도에서 시작한 서울세계불꽃축제(올해는 10월 8일). 보통 10만∼12만 발을 쏜다. 2002년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시작했으나 지금은 매년 120만 명이 찾는 서울의 대표적 축제로 자리 잡았다. 그 후 포항국제불빛축제(2004년·80만 명)와 부산불꽃축제(2005년·140만 명)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어떤 의미인가.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불꽃축제에 참가했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불꽃은 예술이었고, 돈 내고 표를 사는 건 신천지였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로부터 10년이나 걸렸지만, 드디어 꿈에 다가간 것이 서울세계불꽃축제다.”

불꽃이 ‘킬러 콘텐츠’가 되리라던 손 상무의 생각은 요즘 더 발전했다. 지금은 “첨단문화기술로 만드는 문화산업콘텐츠, 문화관광자원”이라고 주장한다. 불꽃을 다른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해 유료·상설·복합공연으로 바꾸고, 야간 공연을 통해 체류형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불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자고 가게 만들면 경제도 살고,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료 상설공연의 후보지를 꼽자면….

“볼거리는 많은데 자고 가지는 않는 경주, 자연은 아름다운데 밤에는 할 일이 없는 제주, 서울에서 가깝고 배후도시가 있는 미사리, 접적지역이라 마음대로 쏠 수 있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줄 연천이 있다. 자치단체장이 표를 의식해서 돈 받길 꺼리는 게 문제다.”

그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005년 광안리에서 시작한 부산불꽃축제를 좋은 예로 들었다.

“처음에는 해운대에서 하려고 했는데 상인들이 반대했다. 그런데 광안대교를 보는 순간, 바로 여기다 싶었다. 광안대교에서 발사하는 불꽃은 세계적으로도 장관이다. 나는 죽어가던 광안리가 불꽃 때문에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부산불꽃축제는 지난해 처음으로 7만 원, 10만 원짜리 표를 7000장 정도 팔았다고 한다.

1910년에 시작한 일본 최고 권위의 오마가리(大曲) 전국불꽃경기대회(하루·75만 명), 1940년대 시작한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새해맞이 불꽃축제(하루·150만 명), 1985년 시작한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불꽃축제(9일·230만 명) 등 세계적 불꽃대회는 모두 유료화, 캐릭터상품 판매, 협찬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불꽃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불꽃을 얼마나 크고, 깨끗하게, 음악에 잘 맞춰, 원하는 높이에서 잘 쏘는지를 본다. 우리나라는 톱클래스다. 1년에 두 번 정도 유럽에도 나간다. 관객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웬만한 실수는 관객들이 다 잡아내기 때문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은 강하게, 일본은 오밀조밀하게, 한국과 유럽은 조화롭게 발사하는 것을 선호한다. 불꽃은 매우 주관적인 공연이라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국제불꽃축제는 여러 나라의 다른 음식을 맛본다는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

손 상무는 불꽃의 3대 핵심기술을 곧잘 그림에 비유한다. 제조는 물감, 발사는 붓, 연출은 화가라는 것이다. 같은 물감과 붓이라도 어린이와 피카소 중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듯 불꽃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래서 한화는 불꽃은 만들지 않고 주로 중국에 주문하거나 수입해서 쓴다. 그 대신 무형적 가치인 디자인과 퍼포먼스, 즉 예술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요즘은 무슨 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평창 겨울올림픽에 쓸 성화봉과 불꽃에 매달리고 있다. 불꽃은 역대 어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보다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다. G-500일, G-1년, G-100일, 개폐회식일에 불꽃을 쏠 것이다. 100일 동안 움직이는 성화봉의 주요 숙영지와 메달플라자에서도 불꽃을 준비 중이다. 성화봉은 온도, 바람, 충격, 강수에 잘 견디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는 불꽃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두 번의 올림픽에 모두 참여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드론도 언급했다. 드론을 이용해서 불꽃을 쏘는 것을 4년 전부터 준비 중이라고. 불꽃은 엄연히 화약이기 때문에 드론에 달아 쏘는 데는 상당한 규제가 따르는 게 문제. 다만, 평창에 드론을 이용한 불꽃이 등장할 경우 불꽃은 한 단계 더 진화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관객은 즐기면 되지만, 그래도 불꽃의 종류는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발사 고도로 보자면 꽤 높이 올라가 호쾌하게 터지는 타상(打上)불꽃과 지상 70∼80m 이하에서 적은 화약으로 보여주는 화려한 장치(裝置)불꽃이 있다. 물론 모양으로도 나눈다(불꽃에 관한 용어와 정의는 거의 일본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나는 재미있게 살아왔다. 직원들에게 말한다. 봉급만큼만 일하고 싶으면 불꽃에서 손을 떼라고. 불꽃 팀은 고생하지만 보상은 박수밖에 없다. 불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불꽃 옆에 있어야 한다.” 손 상무가, 직원들이 아니라 자신에게 해온 말로 들린다.









▼영상-레이저에 내레이션 가미… 스토리텔링에 따라 ‘펑 펑’▼
 
요즘 불꽃놀이는 멀티미디어쇼

 

불꽃놀이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불꽃 모양은 국화, 모란 등 원형이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특정한 물건 모양으로 터지는 ‘형물(型物)’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일본 오마가리 불꽃대회는 ‘창조불꽃’이라는 경쟁부문을 두고 있고, 1992년부터는 젊은 불꽃장인만 참가하는 ‘신작불꽃 컬렉션’도 개최 중이다.

발사는 수동이나 전기로 점화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컴퓨터를 이용한 연속 자동점화가 주류다. 무선발사도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86아시아경기 폐회식을 현대적 불꽃놀이의 시작으로 본다. 여러 발을 동시에, 또는 계속해서 발사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스타마인(Starmine)’이라는 휘황찬란하고 웅장한 발사 방법도 등장했다. 요즘 대세는 ‘스타마인’이다.

연출 쪽에서는 음악(비트)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졌다. 일본은 1994년 요코하마 핫케이지마(八景島) 시파라다이스의 공연을 불꽃과 음악이 본격적으로 만난 대회로 본다. 손무열 상무도 “요즘 가장 신경을 쓰는 게 선곡”이라고 했다. 음악은 그 지역의 FM주파수를 사서 스마트폰으로 듣게 하는 ‘라디엔티어링’이라는 방식을 쓴다. 비트와 발사를 정확히 맞추려면 타이밍이 생명. 미국이 개발한 파이로디지털발사시스템, 파이어원시스템이 유명하다.

또 하나는 스토리텔링. ‘사랑’을 테마로 30분짜리 공연을 한다면 젊은이, 장년, 부모와 자식의 사랑 등으로, ‘희망’이 테마라면 춘하추동으로 나누고 고저장단까지 넣어야 한다. 여기에 영상, 조명, 레이저, 특수효과, 내레이션을 가미해 멀티미디어쇼로 만드는 게 요즘 추세다.

불꽃은 리허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문을 받을 때도 고객에게 보여줄 게 없다. 한화 불꽃 팀은 최근 3D시뮬레이터를 개발하고 있다. 고객의 주문과 예산에 맞춰 3D시뮬레이터로 공연의 개요를 미리 보여주자는 것. 고객중심의 기특한 이 발상은 1, 2년 내 상용화가 목표다.

손 상무 팀은 2012년부터 3년간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한국 전통모양 불꽃제품, 컴퓨터발사장비, 연출프로그램 소프트웨어, 3D시뮬레이터 등을 일부 개발했다. 곧바로 사용할 수는 없으나 국산화를 위한 예행연습은 확실히 한 셈.

일본 오마가리 불꽃대회 ‘창조불꽃’ 부문에서 수상경력이 화려한 곤노 요시카즈(今野義和) 씨는 말한다. “‘창(創)’이라는 한자에는 ‘상처를 입힌다’ ‘파괴한다’는 의미도 있다. 지금 있는 것을 일단 부수고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라고 생각한다.”

곤노 씨가 말하는 일본 불꽃업계의 고민과 변화는 손 상무가 말하는 한국 사정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런데, 곤노 씨를 인터뷰한 책의 발행일을 보니 2005년. 일본은 우리보다 10년이나 앞서가고 있는가. 손 상무가 더 바빠져야 할 것 같다. 불꽃세상의 변화는 다른 분야에 비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