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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8년전 약물도 잡아내” 리우, 차원 다른 反도핑

입력 | 2016-07-09 03:00:00

[악마의 유혹 도핑-차원이 달라진 反도핑 기술]




다시 전쟁이다. 악마의 유혹에 못 이겨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대는 자와 이를 잡으려는 자, 그들의 쫓고 쫓기는 대결의 ‘2016년 리우 버전’이 다가오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달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도핑(Doping·운동선수가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약물을 먹거나 주사하는 행위 등)과의 싸움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깨끗한 대회로 치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며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는 물론이고 이를 제공하거나 방법을 알려준 모든 관계자를 끝까지 찾아내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IOC가 ‘도핑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은 이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지난해부터 잇달아 터지고 있는 ‘도핑 스캔들’이 세계 스포츠계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IOC의 엄포에 ‘박태환 파문’을 겪은 한국 선수단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표팀 선수들은 감기, 근육통 등에 걸리면 철저하게 태릉선수촌에서 처방해준 약만 먹고 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오픈에 출전했을 때 황열병 예방주사 후유증으로 고열, 오한, 어지럼증 등으로 고생했던 배드민턴 남자 복식 세계 랭킹 1위 유연성은 “도핑 테스트를 의식해 다른 약을 전혀 먹을 수 없었다. 허용 약품인 타미플루만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 10억분의 1g 남아도 적발… 태릉 “감기약도 허락없인 먹지말라” ▼


컨디션 유지를 위해 먹는 보양식이나 건강보조식품도 예외가 아니다. 유연성과 짝을 이뤄 남자 복식 금메달을 노리는 이용대는 도핑을 의식해 사전 확인 작업을 거친 비타민, 타우린 성분 약품과 홍삼, 장어즙 등만 먹고 있다. 이득춘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태릉선수촌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사전 검열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확인한 뒤에야 선수들의 투약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 유도도 선수들의 도핑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유도는 과거 ‘방귀만 사태’를 겪은 적이 있다. ‘유도 천재’로 불리며 IOC의 장학금까지 받았던 방귀만(33)은 2010년 10월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도핑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알고 지내던 외국 선수가 “피로 해소에 좋다”며 건네준 음료수를 마신 게 화근이 됐다. 고의성은 없었지만 2년 출전 정지 징계를 당했다. 강동영 대한유도회 사무국장은 “선수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사건으로 선수들의 도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한약을 지을 때도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지난달에는 KADA에서 남녀 대표팀 12명 전원을 대상으로 도핑 검사를 하는 등 매뉴얼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진영수 KADA 위원장은 “우리 선수들이 도핑 검사에 걸린 사례들을 보면 고의보다 과실이나 부주의로 인한 게 훨씬 많았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이상 땀 흘리며 준비해 온 올림픽이기 때문에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도핑 관리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올림픽도 끝까지 추적” 단호한 IOC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 연구원들이 소변의 성분을 분석하는 자동측정기에서 소변 샘플을 꺼내고 있다. 소변은 도핑 검사의 가장 기본적인 시료로 사용된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주관하에 채취된 도핑 시료는 곧바로 KIST로 보내진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제공

카자흐스탄은 2012 런던 올림픽 역도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다. 남자 94kg급 일리야 일린, 여자 53kg급 줄피야 친샤로, 63kg급 마이야 마네자, 75kg급의 스베틀라나 포도베도바다. 하지만 최근 이들은 모두 금메달을 빼앗겼다. 리우 올림픽에서 2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꿈도 깨졌다. IOC가 최근 실시한 도핑 샘플 재조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도핑 검사에 적발된 이들의 소변 샘플은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 채취된 것이다.

IOC는 런던 올림픽은 물론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채취한 소변 샘플 719개(베이징 454개, 런던 265개)에 대해 최근 재검사를 실시했다. 올림픽 당시에는 모두 음성 반응을 나타낸 샘플들이었다. 하지만 재검사 결과 719개 가운데 54개(베이징 31개, 런던 23개) 샘플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4500건 이상의 도핑 검사를 실시해 양성 반응자 9명을 적발했던 베이징 올림픽 때와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IOC의 재검사 결과를 전달받은 국제역도연맹(IWF)은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3명 이상의 금지약물 복용자가 나온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1년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IWF는 세계역도선수권대회 등 국제무대에서 금지약물 복용 혐의를 받아 온 북한에 대해서도 올림픽 출전권 2장을 박탈했다. 북한은 ‘역도 영웅’ 김은국이 지난해 11월 세계선수권대회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자격 정지를 당했다.

4년, 8년 뒤 검사에서 훨씬 많은 도핑 선수를 적발해 낸 것은 나노기술 등 반도핑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8년 전만 해도 금지약물 성분이 100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 이상이 돼야 적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ng만 돼도 검출할 수 있다. “IOC는 10년 동안의 도핑 샘플을 보관하고 있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는 더 숨을 곳이 없다”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말이 결코 엄포가 아닌 이유다.

미녀 테니스 스타 마리야 샤라포바(29·러시아)의 리우 올림픽 출전 꿈을 깨버린 것도 발달된 반도핑 기술이다. 샤라포바가 꾸준히 복용해 온 멜도늄은 협심증과 심근경색 치료제로 지난해까지는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올해 금지약물 리스트에 포함됐다. 소치 겨울올림픽 때 러시아 선수들이 사용했다는 크세논 가스도 혈액에 산소 용량을 늘려 지구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치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감시 약품이 아니었다. 1968 멕시코 올림픽 때 20여 종이었던 금지약물은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150여 종에 달했고 리우 올림픽에서는 500종이 넘는다.

금지약물 복용과 함께 흔히 쓰이는 수법이 혈액을 이용한 도핑이다. 이는 선수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해 인위적으로 적혈구 수를 증가시키는 행위다. 금지약물은 아니지만 WADA가 적시한 ‘금지방법’이어서 도핑으로 간주된다.

최근에는 뇌를 자극해 운동성과를 높이는 ‘브레인 도핑’도 등장했다. 사이클 선수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브레인 도핑을 한 선수들이 평균 2분 이상 더 페달을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브레인 도핑에 대한 규제는 없다.



“러시아, 정부가 앞장서 조직적 도핑”


IOC가 WADA와 함께 과거 올림픽까지 거슬러 올라가 소변 샘플 재검사를 한 것은 러시아가 중심이 된 도핑 스캔들을 방치했다가는 올림픽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은 막장 드라마를 뺨친다. 시작은 도핑 검사에 적발돼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러시아 육상 선수 율리야 스테파노바(30)의 폭로로 시작됐다. 스테파노바는 2014년 독일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가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을 돕고 있다. 러시아 육상 관계자가 국제기구에 뇌물을 전달하며 도핑 테스트를 피했다”고 털어놨다. 진상 조사에 나선 WADA는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국가 주도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도핑 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한 러시아 선수들의 소변 샘플을 재조사한 WADA는 올 1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개입을 암시하는 추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후 러시아의 도핑을 주도했다고 WADA가 지목한 RUSADA의 전직 간부 2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정부 개입 의혹은 증폭됐다. 여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전 RUSADA 실험실 소장은 5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최소 15명의 러시아 메달리스트들이 정부 주도의 도핑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다”며 “도핑 전문가들과 정보국 소속 요원들이 선수들의 소변 샘플을 미리 받아 놓은 깨끗한 것으로 바꿔치기했다. 선수들에게는 금지약물 3개를 혼합해 만든 약물을 위스키나 칵테일에 섞어 마시게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소치 올림픽 개막 이전에 러시아 체육부가 자신에게 이메일로 도핑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폭로했다. 또 소치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부터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모스크바에 있는 RUSADA 실험실에 드나들었고, 소치 올림픽 기간에는 매일 정부 관계자로부터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해야 하는 선수 명단을 받았으며 비탈리 뭇코 체육부 장관으로부터 샘플 조작의 대가로 돈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의 개입이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며 “러시아 육상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IOC가 “금지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육상 선수는 러시아 국기를 달고 출전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IAAF는 개인 자격 출전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육상 선수들은 리우 올림픽에 도핑 테스트를 통과한 뒤 개인 자격으로 오륜기를 달고 출전해야 한다. 중립국 선수로 분류되기에 메달은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 러시아 스포츠에는 재앙과 같은 일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24개로 종합 4위를 했을 때 러시아가 육상에서 딴 금메달은 8개였다.



효과는 잠시… 신체에는 치명적

한국스포츠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도핑은 포도 껍질로 만든 술의 이름 ‘Dop’에서 유래됐다. 20세기 초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보어전쟁(영국과 네덜란드인의 후손 보어족이 세운 트란스발 공화국과의 분쟁)이 발발했을 때 이 지역 줄루족 전사들이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마셨다고 전해진다.

반면 반도핑이 등장한 것은 한참 뒤다. 1960 로마 올림픽에서 사이클 경기 도중 사망한 덴마크 선수의 사인이 흥분제 과다 복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게 계기가 됐다. 국제사이클연맹(UCI)은 1966년부터 도핑 테스트를 시작했다. 올림픽은 1968 그르노블(프랑스) 겨울 대회부터다. 영국에서 경주마의 타액 검사를 시작한 게 1911년이었으니 말보다 사람에 대한 반도핑이 훨씬 늦었다. 도핑 검사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자 IOC가 1999년 설립한 산하 기관이 WADA다.

도핑 테스트가 뒤늦게 실시된 것은 기술의 미비도 있었지만 도핑이 부도덕한 행위라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400m 허들에서 금메달을 따며 ‘허들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에드윈 모지스(61·미국)는 지난해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 WADA 교육분과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했다. 그는 당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서울 올림픽 때 벤 존슨이 금메달을 박탈당한 것보다 그 선수만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흔히 도핑을 금지하는 이유가 시험의 부정행위처럼 스포츠의 공정성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도핑 전문가들이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공정성보다는 선수 자체다. 금지약물의 남용이 선수 개인의 몸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이디 크리거(50·현재 이름은 안드레아스 크리거)는 금지약물의 부작용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투포환 선수였던 크리거는 10대 후반부터 지도자들이 주는 ‘영양제’를 정기적으로 복용했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근육이 붙고 기록도 좋아졌다. 20세이던 1986년에는 유럽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가슴이 작아졌고 온몸에 털이 났다. 크리거가 영양제인 줄 알고 먹은 것은 스테로이드제 계통의 금지약물이었다. 당시 동독에서는 어린 선수들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일이 흔했다. 동독이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암울한 배경이다. 24세의 나이에 필드를 떠난 크리거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고 31세에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이름도 바꿨다.

올림픽은 ‘더 빨리(Citius)! 더 높이(Altius)! 더 힘차게(Fortius)!’를 추구하는 무대다. 4년에 한 번 열리기에 금지약물의 유혹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이클 황제’에서 ‘추악한 약쟁이’로 추락한 랜스 암스트롱(45·미국) 역시 2013년 한 방송에 출연해 “내가 선수로 뛸 때만 해도 금지약물 복용이 만연했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도핑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선수들은 ‘악마의 유혹’을 받고 있다. 걸리지 않고 메달을 딸 수만 있다면 들통이 날 때까지는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 IOC는 리우에서 벌어질 ‘금지약물과의 전쟁’에서 이전보다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러시아 육상 선수들은 자국 국기를 달고 출전할 수 있을까. 2016 리우 올림픽의 장외 관전 포인트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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