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악마의 유혹 도핑-한순간에 추락한 스포츠 스타들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100m 결선에서 캐나다의 벤 존슨(오른쪽)이 오른팔을 치켜들며 1위로 들어오고 있다. 존슨은 사흘 뒤 금메달이 박탈됐다. 동아일보DB
정작 승부는 싱거웠다. 존슨은 출발부터 결승선까지 선두를 질주했다. 골인할 때는 오른팔을 번쩍 들며 루이스를 돌아봤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를 가리는 이 종목에서 이렇게 여유를 부린 선수는 없었다. 기록은 당시 세계 최고인 9초79. 루이스는 9초92에 그치며 2위를 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분과위원회의 도핑검사 결과 존슨에게서 금지약물이 검출됐다. 27일 IOC는 존슨의 금메달 박탈을 공식 발표했고 금메달은 루이스에게 돌아갔다. 존슨은 1991년 ‘2년 징계’가 풀려 복귀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 1993년 다시 도핑검사에 적발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영구 제명됐다. 약물로 선수 인생을 망친 존슨은 ‘반도핑 전도사’로 변신해 2013년 다시 한국을 찾기도 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치밀하게 도핑을 일삼았던 사이클의 랜스 암스트롱. ‘지금의 반도핑 기술은 암스트롱 덕분에 발전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동아일보DB
대부분의 선수가 그런 것처럼 단순히 주사를 맞거나 약물을 복용한 존슨과 달리 암스트롱은 주도면밀하게 약물을 통해 자신의 몸을 바꿨다. 그는 처음에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를 많이 만들어내는 합성 호르몬을 주입했다. 당시만 해도 합성 호르몬을 검출하는 방법이 없었다. 호르몬 적출법이 등장하자 자신의 피를 뽑아 보관했다가 경기 직전에 수혈하는 방법으로 적혈구를 늘렸다. 진해진 혈액의 농도를 적발하는 방법이 나오자 이번에는 혈액을 묽게 만드는 식염수까지 맞았다. 일시적으로 산소 공급 능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는 방법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선수 개인이 이런 방법을 알 수는 없다. 의사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랐을 것”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순간 최대 근력을 내기 위해 암스트롱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했다. 이때는 검사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소량만 사용했다. 미국반도핑기구(USADA)는 “암스트롱의 도핑 방법은 놀라운 수준이다. 그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 전문적이며 성공적인 도핑을 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믿기 힘든 암스트롱의 성과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999년 도핑검사에서 금지약물이 소량 발견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의혹은 2010년 팀 동료였던 플로이드 랜디스가 자신의 약물 복용 사실을 고백할 때 암스트롱도 도핑을 했다고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한국 수영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27)도 도핑에 발목을 잡혔다. 박태환은 2014 인천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채취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약물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됐다. 병원에서 네비도 주사를 맞은 게 문제가 된 것. 수사 결과 원장의 부주의에 따른 과실로 드러났지만 국제수영연맹(FINA)은 2015년 3월 박태환의 선수 자격을 18개월 동안 정지하고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딴 메달을 박탈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762개)과 한 시즌 최다 홈런(2001년 73개) 기록을 갖고 있는 배리 본즈(52)와 본즈 이전에 한 시즌 최다 홈런(1998년 70개)의 주인공이었던 마크 맥과이어(53)도 약물로 체면을 구긴 선수들이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