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중국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홍기택 부총재가 맡았던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직위를 국장급으로 격하하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부총재로 격상한 후 공모에 들어갔다. 홍 씨가 돌연 휴직계를 내고 잠적한 지 14일 만이다. “한국이 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겠다”던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다짐은 허언(허言)이 됐다.
4조3000억 원의 분담금을 내고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진리췬 AIIB 총재를 만나 어렵게 확보한 자리다. AIIB는 후임자 요건으로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공개 거론해 대놓고 한국에 창피를 줬다. 또 누가 후임으로 가더라도 한국 몫으로 부총재가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중국을 빼면 네 번째로 지분이 많은 한국에 대해 무례하고도 일방적인 조치다.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무엇보다 무능하고 소신도 없는 데다 공직 윤리마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사람을 버젓이 국제기구 고위직에 보낸 청와대의 무리한 낙하산 인사와 후임 인선에 손을 놔버린 정부 부처의 합작품이다. 2월 임명 때 13년 만에 국제금융기구 임원을 배출했다며 ‘외교성과’라고 자랑했던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 홍 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동문인 서강대 출신으로 대선캠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 분과에서 활동했다.
대통령은 친인척 비리가 없다며 깨끗한 정부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홍 씨 같은 낙하산 공직자의 무책임이야말로 그 어떤 부패보다 심각한 사태다. 홍 씨가 유럽에 있어 ‘연락 두절’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작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