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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최고야]‘위로’를 팝니다

입력 | 2016-07-11 03:00:00


최고야 소비자경제부 기자

3년째 유통 분야 기업을 출입하며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이 있다. 바로 “요즘 장사가 안 돼요”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듯 경기를 타지 않고 “요즘 잘나간다”고 말하는 것이 세가지 있다. 화장품, 여행, 편의점 업계다.

화장품이 잘나가는 데는 한류 덕이 크다. 전형적인 내수산업이던 화장품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진출하면서 최근 몇 년 새 수출액이 급증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사가야 하는 필수품목으로 통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반면 패키지 여행사를 비롯해 항공권 예매, 숙박예약 업체 등은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이 늘면서 호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년 해외로 나가는 우리 국민은 1900만 명을 넘어섰다. 1, 2위를 다투는 여행사들은 달력이 한 장 넘어갈 때마다 경쟁하듯 전달에 비해 상승한 실적 자료를 배포한다.

편의점은 어떤가. 편의점업은 철저히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크고 있다. 1980년대 처음 국내에 도입된 편의점은 어느 때보다 몸집이 커졌다. 올해 말까지 상위 3개 업체의 전국 점포 수를 합치면 3만 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소도시의 골목골목까지 편의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화장품이야 한류 열풍을 타고 활황을 맞았다 치자. 여행과 편의점에 대한 국내 수요가 왜 이렇게 늘어나는지 궁금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 배경에 숨겨진 공통적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1인 가구’다. 1인 가구의 소비 생활에 편의점과 여행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27.2%. 인구로 따지면 약 5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대다수는 학업과 직장 때문에 타지 생활을 하는 20, 30대일 가능성이 크다. 혼자 사는 고달픔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이들에게 편의점과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싱글족들에게 편의점은 단골 밥집 같은 존재다. 매 끼니를 직접 만들어 먹기 힘든 이들에게 편의점은 엄마가 차려준 것 같은 식사를 24시간 대령한다. 최근 편의점들이 쌈밥, 김치찌개, 장어 등 최고 1만 원짜리 고급 도시락을 앞다퉈 내놓는 것도 이들을 겨냥한 것이다. 따뜻한 엄마의 밥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굶지 않고 밥과 반찬을 챙겨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딸린 가족이 없으니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기도 쉽다. 여행 한 번에 몇 달간 저축한 수백만 원이 깨지더라도 “일단 떠나고 보자”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등바등 모아도 어차피 내 집 마련이 어려울 바에야 즐기며 살자는 의미에서다.

언뜻 보면 편의점에서 밥을 먹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별개의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를 듯한 이 소비 행태에서 찾을 수 있는 묘한 공통 정서가 있다. 두 업종은 ‘위로’를 팔고 있었다. 편의점이 먹고사는 사소한 ‘일상의 위로’를 제공한다면 여행은 빡빡한 일상을 뒤로하고 잠깐 쉬어 가도 좋다는 ‘특별한 위로’를 준다.

연애, 내 집 마련, 꿈 등을 포기해 ‘N포 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게 위로에 목말라서라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모두가 나 혼자 잘살겠다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시대.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너는 잘살고 있어”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그립다. 서로에게 “너희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면 어떨까.
 
최고야 소비자경제부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