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 만드는 고위공직자가 “민중은 개돼지 취급하면 된다” ‘내부자들’ 대사 읊었다고? 분노가 극에 달한 ‘원한 사회’ 관료가 국가경쟁력 갉아먹었다… 공직사회 개조 약속한 대통령 ‘보고서’에 언제까지 속을 텐가
김순덕 논설실장
영화 ‘내부자들’에 그런 대사가 있다고 했을 뿐이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그의 방송 인터뷰를 믿고 싶다. 교육부 내부에선 억울하게 됐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왜곡 보도라는 게 자신 있다면 부디 제소해서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
그럼에도 취중에 진담 나오는 법이다. 보도에 따르면 나향욱은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다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민중은 개돼지다, 이런 멘트가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내부자들’이라고 알려주자 나향욱은 “어, 내부자들” 하면서 “(민중을)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라고 설명을 붙였다. 고위공직자로서 취중 아니라 몽중(夢中)에서도 해선 안 될 발언을 한 것이다.
집권 4년 차에 으레 터지는 친인척·측근 비리도 아니고, 장차관도 아닌 일개 국장의 취중 발언에 왜 분노하는지 모른다면 이 정권은 레임덕이 분명하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타이밍이다. 흙수저, 금수저론이 들끓고, 여야 대표들이 양극화 해소를 시대정신으로 제기하고, 심지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까지 벌어진 시점에 나향욱은 “격차가 존재하는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라고 했다. 국민 염장을 질러버린 것이다.
정치철학자 윤평중은 ‘철학과 현실’ 여름호에서 “한국은 거대한 르상티망(ressentiment) 사회”라고 했다. 르상티망은 승자와 강자에 대한 패자와 약자의 원한, 질투, 시기심 등 대단히 부정적인 감정의 결합체다. 격차로 인한 불만이 극에 달해 ‘원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양극화가 심해져도 공정한 기회와 과정을 통한 결과라면 패자가 원한까지 품지 않는다. 공정한 기회와 과정의 틀을 짜고 집행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고 공직자들이 봉급 받는 이유다.
그런데 뭐?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하고, 나향욱 자신은 1%에 속하려 노력하고, 자사고에 다니는 둘째는 99%의 민중이 될 리 없고,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스크린도어 수선공)에 대해 내 자식처럼 가슴 아파하면 위선이라고? 첫 조각에서 17개 부처 장관 후보자 10명이 관료 출신일 만큼 관료들을 떠받들었던 박근혜 정부다. 그 관치(官治) 마인드가 국민을 개돼지로 안다는 것이기에 소름 끼치는 거다.
결국 대입 자기소개서 쓰는 데 컨설팅 비용으로 100만 원씩 들어가는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 늘어난 건 신분제를 굳히기 위해서란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국민이 개돼지 수준이니 정부가 인증한 역사만 가르치라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밀어붙였을 것이다. 누리예산을 한사코 안 내주는 것도 내 새끼까지 개돼지 만들기 위해서가 틀림없다. 대통령 측근 비리는 그래도 측근과 비리를 도려내면 됐다. 하지만 나향욱의 발언은 이 정부의 정책 신뢰도를 사정없이 추락시키고, 전복(顚覆)의 칼을 갈게 만든다는 점에서 측근 비리보다 불온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지만 프랑스혁명을 불러왔다. 나향욱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았대도 어쩔 수 없다. 나, 개돼지는 내 혈세로 당신들 죽을 때까지 공무원연금 바치기 싫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