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보수당 대표경선 반전 드라마
앤드리아 레드섬 영국 에너지 차관은 11일 차기 총리를 뽑는 보수당 대표 경선을 포기하면서 “9주간의 캠페인 기간이 너무 길어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며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경선은 9주의 기간이 딱 적당하다”고 말해왔던 그다.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사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과 함께 보수당 대표 경선 결선에 진출한 레드섬 차관의 기세는 사실 대단했다. 의원이 투표하는 1차, 2차 투표와 달리 보수당 당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결선 투표에선 레드섬 차관에게 우호적이었다. 당원의 5분의 3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찬성하고 있어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잔류를 지지했던 메이 장관에 대한 반감도 컸던 게 사실이다. 보수당원 여론조사 결과 레드섬 차관이 12%포인트나 앞선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이처럼 기세가 등등한 레드섬 차관을 낙마시키는 데는 말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레드섬 차관은 8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자녀가 없는 메이 장관보다 (자식이 3명이나 있는) 내가 더 나은 총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레드섬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식이 없는 메이의 가족 문제까지 건드렸다면서 보수당 여론이 순식간에 돌아섰다. 레드섬의 한 측근은 BBC방송에 “(경선을 포기하라는) 욕설이 엄청났다”고 험악해진 분위기를 전했다.
논란 이후 레드섬은 사과 대신 “더타임스가 정반대로 보도했다”고 언론 탓을 하는 데 급급했다. 이후 더타임스가 인터뷰 녹음을 공개하고 “레드섬이 대표가 되면 탈당하겠다는 보수당 의원이 20명”이라는 보도까지 나오자 사흘 뒤인 11일 메이 장관에게 사과하고 결국 사퇴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 총리가 임명되면 영국과 EU 간에 탈퇴 협상에 공식 돌입하는 리스본조약 50조 발동 여부가 수면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메이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브렉시트 추가 국민투표는 없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다만 선거 기간 내내 “탈퇴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실제 발동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이 장관을 ‘실용주의적 개혁가’로 평가했다. ‘철의 여인’ 제2의 마거릿 대처로 불리지만 정작 경제 성향은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평가다. 메이 장관은 “보수당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11일 ‘대담하고 긍정적인 비전(bold positive vision)’을 발표했다.
FT는 “메이 장관이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분열된 영국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보수당이 시장과 개인주의가 아닌 사회와 공동체를 위하는 당이 돼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이 장관은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가혹한 사법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사회 불평등을 바로잡겠다”는 비전도 내놓았다. 메이는 자신을 동성애자를 지지하고 남녀평등을 주창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이민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강경한 편이다. 유럽 난민 위기 때도 함께 협력하자는 EU의 제안을 거부하고 더욱 강경한 이민과 난민 억제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