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평소에도 국기를 곳곳에 걸어 두는 나라다. 사진은 알트도르프의 상가.
조성하 전문기자
스위스에서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이들은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이다. 프랑스에서 종교탄압을 피해 알프스 산골로 피신해온 위그노교도다. 초콜릿도 비슷하다. 19세기에 초콜릿을 즐기던 이들은 이탈리아인이다. 그런 초콜릿을 이젠 스위스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고 네슬레(Nestle)와 린트(Lindt) 같은 세계적 초콜릿 브랜드도 모두 스위스 것이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를 오래 휘저어 부드러운 맛을 내게 하는 콘칭 기법을 1879년 린트가 가장 먼저 개발했기 때문이다. 또 밀크초콜릿에 꼭 필요한 신선한 밀크도 알프스 목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한 이유다. 외부인들이 만든 시계와 초콜릿도 이제는 스위스를 상징하는 열십자 안에 들어 있다.
그런 열십자는 어디서 왔을까. 스위스 연방을 구성하는 독립 주 캉통(Canton) 중 하나인 슈비츠의 문장(紋章)에서 나왔다. 슈비츠는 1291년 세 도시가 동맹을 체결할 당시 처음부터 참가했고. 동맹은 나중에 연방으로 발전한다. 스위스라는 나라 이름 역시 슈비츠에서 나왔다. 그런데 십자가엔 ‘더하다’는 의미도 있다. 스위스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로망슈어를 사용하며, 알프스 산골 곳곳에 있는 여러 소도시의 연합체, 즉 연방이다. 처음에 셋이었던 가맹도시가 지금은 스물여섯으로 늘었다. 지역과 언어의 다양성이 시계와 초콜릿 같은 특산물의 배경이다. 스위스는 계속 더하면서 형성된 나라인 것이다.
스위스 은행의 핵심가치는 ‘절대 신용’이다. 그리고 거기에 힘을 보탠 건 용병제도다. 지금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용병은 스위스 각 캉통의 주력산업이자 수지맞는 외화벌이였다. 900년간 50만 명 이상이 자신의 목숨을 돈과 바꿔 가정과 나라를 꾸렸다. 그래서 용병은 스위스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제도다.
스위스 용병은 유럽 최고였다. 죽음 앞에서도 충성서약을 저버리지 않는 신의 때문이었다. 프랑스혁명 때다. 루이 16세는 공화파 군대에 쫓겼다. 그는 가망이 없어지자 자신을 지키던 스위스 용병 대장에게 떠나라고 했다. 뒤쫓는 공화파도 귀향하는 용병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귀향을 거부하고 왕의 피신을 도우며 혁명군과 맞섰다. 결국 768명 전원이 전사했다. 루체른 시내 한적한 공원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은 그걸 기념한다. 그런 용병의 충성심이 스위스 은행이 신뢰를 받는 토대임은 당연하다. 이런 전통은 예금주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법률의 기반이 됐다. 1940년 나치정부가 독일계 유대인 예금주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계기가 됐다.
브랜드란 이런 것이다. 어떤 것을 생각할 때 단박에 떠오르는 직감이다(브랜드다큐멘터리 잡지 ‘매거진B’ 발행인 조수용 JOH 대표). 그 점에서 ‘스위스’라는 브랜드는 ‘뭔가 믿음이 가는 나라’ ‘무엇이든 정확할 듯한 나라’ ‘예쁘고 아름다운 나라’다. 그런 가치를 뒷받침하고 있는 이미지가 은행과 시계, 초콜릿과 알프스 등이다. 이런 걸 통해 우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브랜드엔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 문화, 그리고 가치가 녹아 있음을. 국가 브랜드에는 나라와 민족 전체가 담겨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새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다. 그 이유를 나는 구호가 직감과 다르다는 것에서 찾는다. 한마디로 공감이 안 간다는 뜻이다. 게다가 교육부가 2014년부터 진행 중인 ‘CK’(University for Creative Korea) 사업과도 이름이 같다. 그러니 재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지.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