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명삼존천불비상
조팝꽃, 산수유 꽃이라 해도 좋았고
더러는 모란이라 함박꽃이라 해도 좋았을 게다
봄철 하루나 이틀 환한 날빛 속에
몸부림 하나로 피었다 지는 목숨을 두고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더 꿈꾼다 했던가
연꽃 불꽃무늬 모자를 쓰시고
이슬 속에 피어나는 연꽃송이 맨발로 밟고 계신 부처님
한결같이 웃음 머금고 바라보아 주시니
세상의 온갖 소란스러움과 어지러움이 잠잠해지고
저승 가는 길 어둔 강물조차 밝았다 할 것인가
깡그리 망가져 보이지 않는 이목구비 흐려진 미소여
흐려졌기에 더욱 그립고 서러운 미소 일천의 바다여
여전히 고달픈 오늘의 세상사 어지러운 인간사
불쌍히 여기소서 어여삐, 부디 어여삐 여기소서.
여기 국보 108호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은 다른 삼존불과는 달리 망국민의 통한의 비원과 윗대 조상들의 명복과 천도를 비는 사무치는 기도가 천의 부처님과 80여 글자로 빼곡히 새겨져 있어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젖게 한다.
1960년 충남 조치원읍 근처의 서광암(瑞光庵)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가까운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어서 본래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석비상은 낮은 기단 위에 91cm 높이의 비신을 세웠으며 몸체는 4면으로 앞면 중앙에 삼존불좌상을 돌출로 새기고 옆과 뒤까지 거의 900여 구에 이르는 천불상과 비석의 조상기(造像記)가 둘러져 있다.
연꽃무늬의 보주형광배(寶珠形光背)를 등진 본존부처님은 통견(通肩) 법의를 입고 네모꼴 대좌에 결가부좌했으며 가슴에는 卍자를, 손 모양은 수인(手印)을 하고 있고, 머리에 햇무리를 쓴 두 협시보살은 가위 모양 엇갈린 천의(天衣)를 입고 있으며 오른쪽 보살의 오른손에는 연꽃,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데 왼쪽 보살은 마멸이 심하여 알아볼 수가 없다.
시인은 ‘여전히 고달픈 오늘의 세상사 어지러운 인간사/불쌍히 여기소서 어여삐, 부디 어여삐 여기소서’라고 빌고 빈다. 오, 백제 천의 부처님 어여삐 그 소원 들어주시리라.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