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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박원순과 이재명

입력 | 2016-07-13 03:00:00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유신을 밀어붙였을 때 야당 정치인들 중 강경 반대파는 잡아가두고 온건 반대파는 가택연금을 한 뒤 군인들이 지키게 했다. 야당인 신민당을 이끌던 유진산의 집 부근에는 군인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유진산은 모처에 전화를 걸어 “여보, 날 진짜 왕사쿠라 만들 거요. 왜 정치를 그리 몰라. 왜 우리 집만 보초가 없느냔 말야”라고 따졌다. 야당 거물인 유진산에게는 ‘사쿠라’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독재정권에 야합하는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계도시정상회의 참석 중 “인권은 김대중(DJ) 전 대통령, 리더십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를 닮았다”고 자평했다. 싱가포르 현지인들로부터 국부(國父)로 존경받는 리 전 총리의 리더십을 치켜세워 호감을 끌어내는 센스가 돋보인다. 하지만 국가 원수와 자신을 비교하는 자기 과시는 거슬린다. 박 시장은 틈만 나면 대선주자 후보군에 자신을 밀어 넣는 자가발전을 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행정자치부의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 작업에 맞서 12일자 일부 신문 1면에 ‘행자부 4대 거짓말!’ 의견광고를 냈다. 광화문광장에서 열흘간 단식투쟁에 이은 두 번째 공세다. 지방재정 격차 해소라는 방향은 옳다 해도 당장 1000억 원 넘는 세금을 빼앗기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선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처지가 같은 6개 시의 선두에서 싸우면서 전국적 인지도는 꽤 상승했다. 더불어민주당 당권 도전도 넘볼 만큼 ‘투사형’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곧 전당대회를 통해 여야의 지도자가 바뀌고 내년엔 대한민국호의 선장도 새로 선출된다. 잠재 후보들은 저마다 21세기에 걸맞은 능력과 경륜을 갖췄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스스로를 리콴유 DJ에 대비한 박 시장은 구의역 사고처럼 발밑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와 각은 잘 세우지만 포퓰리스트 분위기가 물씬하다. 과거 사쿠라형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대중의 인기에 집착하는 포퓰리스트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