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7월 14일)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가 서울을 출발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독일까지 1만5000km가 넘는 거리를 200여 명의 대원이 함께 가는 대장정이었다. 대학생과 청년 대원들은 가는 곳마다 화합과 평화를 주제로 현지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며 어울렸다. 당초 친선특급은 북한 구간도 직접 열차를 타고 통과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남북관계 경색과 북한의 무반응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당연히 남북 청년들이 어울릴 기회도 사라졌다.
친선특급이 모스크바에 도착한 7월 26일,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던 주러시아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봤다. 북한 외교관을 만나 ‘모스크바, 베를린도 가는데 왜 평양은 못 가나’라고 묻고 싶기도 했다.
주말을 맞아 외출하려고 대사관 정문을 나서던 북한 외교관에게 ‘오늘 친선특급 열차가 모스크바에 들어왔다,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하긴, 그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북한 외교관은 대사관 건물에서 공동 숙식한다. 생활비 절약은 물론이고 상호 감시를 위한 목적도 있다. 대사관 건물 한쪽에 채소를 가꾸는 텃밭이 있었고, ‘생활도 학습도 항일투쟁처럼’이라는 표어도 보였다.
그러곤 모스크바 서쪽 외곽의 트로예쿠롭스코예 공동묘지를 찾았다. 성혜림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성혜림은 김정일의 아내이자 그의 장남인 김정남(김정은의 이복형)의 생모다. 성혜림의 묘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6년 전 동아일보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했다. 성혜림의 묘는 퇴락한 모습으로 그야말로 쓸쓸히 공동묘지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직선거리로 채 2k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방문자가 없다 보니 안내인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묘지를 찾는 데에만 2시간 이상 걸렸다. 트로예쿠롭스코예 공동묘지는 소정의 비용만 지불하면 묘지를 관리해주는 곳이다. 그런데도 성혜림의 묘는 잡초와 낙엽에 묻혀 주인 잃은 묘처럼 방치돼 있었다. 러시아 안내인은 “모스크바 내 10개 공동묘지 가운데 북한대사관과 가장 가까운 곳에 묘지를 썼을 때는 접근 편의성을 고려했을 텐데 지금은 내버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살벌한 공포정치 속에 북한대사관 관계자들이 차마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생모가 묻힌 곳을 돌볼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성혜림은 생전에도 신변 위협 속에 시누이 김경희로부터 ‘정남이는 내가 돌볼 테니 언니는 러시아에 가 있으라’는 조언을 듣고 러시아로 망명했다.
올해 말로 북한 김정은이 집권한 지 5년이 된다. 경험 부족의 햇병아리 집권자치고 5년을 잘 버틴 셈이다. 국내 보수층의 기대와 달리 김정은 정권은 금방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묘조차 돌보지 못하는 옹졸함으로 어떻게 국가를 잘 운영할 수 있을까. 배신은 항상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저지르는 법이다. 고모부(장성택)를 처형할 때 내세웠던 ‘양봉음위(겉으로는 명령을 받들지만 뒤로는 배반한다)’의 빌미를 김정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조숭호 정치부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