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논설위원
경찰이 공개한 현장검증 동영상을 직접 보니 위조범의 솜씨는 놀라웠다. 색칠작업 프리랜서였던 위조범은 위작 총책의 권유를 받은 유통상과 함께 오피스텔을 얻어 1년여 시행착오 끝에 작품 이미지는 물론 사인까지 진품처럼 위조했다.
지난주 칼럼이 나간 이후 다양한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많은 제보를 받았다. 위작의 규모가 훨씬 더 크다는 거였다. 평소 그와 교유했다는 한 컬렉터 말이다.
수사팀과 미술계의 다양한 증언을 듣고 내린 결론은 이 화백이 지금 작가 인생이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 서 있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경찰의 수사 의지가 확고하다는 거였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1일 “배후까지 조사하겠다”고 한 것은 괜히 던진 말이 아니다.
이 화백 작품을 30년 가까이 거래한 갤러리 현대 박명자 사장, 박 사장과 함께 이 작가가 감정(鑑定)을 위임한 부산공간화랑 신옥진 사장은 물론이고 여러 화랑 대표들과 미술상들이 수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 같다.
사실 화랑들은 작품 판매를 통해 큰 이득을 얻지만 위작 시비가 나올 경우 “작가가 진짜라고 해서 팔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위작 시비가 작가의 명예만 실추시키고 화랑들은 별로 타격을 받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갤러리 현대를 비롯해 이 화백 작품을 거래한 화랑 대표들은 이번 수사에 대해 “한국의 미술계와 국가 권력이 세계적인 거장을 죽이고 있다”는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수사를 피해 보려는 궤변에 불과하다. 거듭 말하지만 위작을 걸러내는 것은 진품의 가치를 올리고 작가를 살리는 길이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과오가 드러나면 오리발을 내밀며 억지를 부리거나 얼버무리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검찰, 교육부 고위 공직자까지 하는 짓이 똑같다. 정신과 혼을 다루는 예술가만큼은 달라야 한다.
한 작가의 절절한 호소를 미술계와 경찰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다. “예술은 거짓 없는 치열한 삶의 과정이고 작품은 그 결과물이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미술계 비리를 뿌리 뽑아 예술가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