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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이우환 화백이 사는 길, 죽는 길

입력 | 2016-07-15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별다른 벌이가 없던 골동품상(위작 총책) 계좌에서 위작을 산 화랑 주인이 지급한 거액의 수표가 나오고, 위조범들 증언이 서로 정확히 일치하는 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까지 나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우환 화백의 태도였다. 위작 판별된 작품들을 1, 2초 쓱 훑어보기만 하더니 무조건 진짜라고 주장했다. 감정 결과와 왜 다른지 물어도 ‘내 말만 믿으면 된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식으로 일관하더니 기자들 앞에서 경찰이 회유했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세계적인 거장이라고 해 존경심이 있었는데 막상 대해 보고 싹 사라졌다. 우리는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칠 것이다.”(수사팀 관계자)

경찰이 공개한 현장검증 동영상을 직접 보니 위조범의 솜씨는 놀라웠다. 색칠작업 프리랜서였던 위조범은 위작 총책의 권유를 받은 유통상과 함께 오피스텔을 얻어 1년여 시행착오 끝에 작품 이미지는 물론 사인까지 진품처럼 위조했다.

지난주 칼럼이 나간 이후 다양한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많은 제보를 받았다. 위작의 규모가 훨씬 더 크다는 거였다. 평소 그와 교유했다는 한 컬렉터 말이다.

“이 화백과 가까운 사람들이 ‘선생 작품은 가짜를 만들기 쉬우니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한 게 이미 5, 6년 전이다. 3년 전에는 인사동에서 가짜를 구해다 보여주기까지 했다. 놀란 이 화백은 며칠 뒤 태도를 바꿔 ‘그건 내 작품’이라고 우겼다. 이후 인연을 끊어버렸다.”

수사팀과 미술계의 다양한 증언을 듣고 내린 결론은 이 화백이 지금 작가 인생이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 서 있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경찰의 수사 의지가 확고하다는 거였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1일 “배후까지 조사하겠다”고 한 것은 괜히 던진 말이 아니다.

이 화백 작품을 30년 가까이 거래한 갤러리 현대 박명자 사장, 박 사장과 함께 이 작가가 감정(鑑定)을 위임한 부산공간화랑 신옥진 사장은 물론이고 여러 화랑 대표들과 미술상들이 수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 같다.

사실 화랑들은 작품 판매를 통해 큰 이득을 얻지만 위작 시비가 나올 경우 “작가가 진짜라고 해서 팔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위작 시비가 작가의 명예만 실추시키고 화랑들은 별로 타격을 받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갤러리 현대를 비롯해 이 화백 작품을 거래한 화랑 대표들은 이번 수사에 대해 “한국의 미술계와 국가 권력이 세계적인 거장을 죽이고 있다”는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수사를 피해 보려는 궤변에 불과하다. 거듭 말하지만 위작을 걸러내는 것은 진품의 가치를 올리고 작가를 살리는 길이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과오가 드러나면 오리발을 내밀며 억지를 부리거나 얼버무리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검찰, 교육부 고위 공직자까지 하는 짓이 똑같다. 정신과 혼을 다루는 예술가만큼은 달라야 한다.

지금 이 화백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도 그것이다. 공권력을 무시하며 근거 없는 진품 주장을 되풀이하는 일을 중단하고 위작의 제작, 유통, 작가확인서 발행 등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진실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과수 주장을 뒤엎는 명백한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화랑들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의 절절한 호소를 미술계와 경찰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다. “예술은 거짓 없는 치열한 삶의 과정이고 작품은 그 결과물이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미술계 비리를 뿌리 뽑아 예술가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