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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外助 정치의 시대

입력 | 2016-07-16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영국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의 주인공인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앨버트 공은 여왕의 부군이라는 이유로 공직도 작위도 받지 못했지만 42세에 사망할 때까지 여왕을 현명하게 보필해 대영제국의 절정기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초상화에서 짐작되지만 여왕은 알아주는 고집불통이었다. 앨버트 공은 이런 아내를 어르고 달래며 막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왕이 휘그당과 토리당 등 어떤 정당에도 기울지 않도록 함으로써 영국 정치에서 양당제 전통을 확립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이 앨버트 공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결혼한 필립 공도 70년 가까이 여왕의 곁을 지키고 있다. 자식들의 요란하고도 불행한 결혼생활로 그림자가 드리울 때도 있었지만 영국의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왕실이 건재한 것은 여왕 부부의 깊은 신뢰 덕분이다. 여왕의 한국 방문 당시 직접 뵐 기회가 있었는데 필립 공이 여왕보다 반 발자국 뒤에 서서 손님을 맞던 기억이 선명하다.

‘권력자 아내, 외조자(外助者) 남편’의 공식이 여성 총리들에게도 발견되는 것은 흥미롭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부부는 옥스퍼드대 캠퍼스 커플이지만 필립 존 메이는 아내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외부 노출을 삼가며 외조에 주력했다고 한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는 점을 두고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부 차관이 “자녀 없는 메이보다 내가 총리로 적격”이라고 공격했지만 자녀 유무와 정치적 능력이 무슨 상관이냐는 여론의 뭇매만 맞았다. 여성 정치인을 보는 대중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메이와 비교되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도 강인한 정치인으로서의 모습과는 달리 가정에서는 열 살 연상 남편에게 크게 의지했다. 데니스 대처는 너무 바쁜 아내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한때 이혼을 고려했다고 딸이 회고했지만 ‘조용한 바보’가 됨으로써 아내의 정치적 성공을 도왔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도 옥스퍼드대 1년 후배인 마이클 에어리스와 결혼해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았으나 미얀마로 들어간 뒤 정치적 이유로 영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남편은 가택연금 생활을 하는 아내를 지지하며 영국서 홀로 두 아들을 키워냈다.

남성 정치인들은 정치 입문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아내의 허락’을 꼽는다. 가족의 지지와 협조 없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성 정치인도 그럴까. 미즈지 편집장을 지낸 레티 코틴 포그레빈은 과거 미국 의회에 진출한 여성들 가운데 미혼 이혼 혹은 사별로 싱글인 여성이 남편 있는 여성의 두 배라는 통계를 제시하며 여성 정치인에게 남편은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 앙겔라 메르켈, 메이에게서 보듯 이 논리는 모두에게 통하지 않는다. 남편으로 상징되는 안정된 결혼생활은 이들의 비밀병기다. 다만 아내에게 정치력을 행사하는 막후 실력자 남편이 나을지, 그림자 행보를 하는 남편이 나을지는 여전히 의문부호다. 조용한 외조를 하는 메르켈, 메이와는 달리 빌 클린턴이 퍼스트젠틀맨이 된다면 결코 뒷방에 물러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야 어떻든 세계는 분명 외조의 시대에 들어섰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