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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고교 10곳중 3곳 ‘무늬만 이과생’ 절반 넘어

입력 | 2016-07-18 03:00:00

동아일보, 2013∼2015학년도 수능 분석




‘무늬만 이과’ 비율이 전체 이과생의 절반 이상인 고등학교가 전국에 445개교(2015학년도 기준, 조사 대상 전체 일반고, 자율형공립고, 자율형사립고 중 33.2%)인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이과이면서 문과형 수학을 응시하는 비율이 최대 96.5%에 달하는 학교도 있었다. 수학은 쉬운 수능 기조에서도 다른 과목보다 평균이 낮고 표준편차가 높아 이과 학생의 대학 진학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문과형 수학에 응시하는 이과 수험생은 매년 나오지만 특정 학교별 ‘무늬만 이과’ 비율을 분석한 건 처음이다. 동아일보는 종로학원하늘교육과 2013∼2015학년도 수능 응시생을 기준으로 과학탐구를 보면서 문과형 수학(2013학년도 수학 ‘나’형, 2014∼2015학년도 수학 A형)을 선택한 비율 상위·하위 고교를 전국과 서울에서 뽑았다.

2015학년도 ‘무늬만 이과’ 비율 상위 1위 학교는 전국에서는 광주 명진고(96.5%), 서울은 동대문구 해성여고(68.7%)였다. 2014학년도에는 제주 애월고(90.3%)와 구로구 오류고(74.4%), 2013학년도에는 경남 진양고(98.5%)와 중랑구 혜원여고(77.4%)가 1위였다. ‘무늬만 이과’ 상위 학교들은 순위가 약간씩 달라질 뿐 매년 비슷했다.

○ 문과 수학 봐도 학생 뽑는 입시

‘무늬만 이과’ 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우려와 이과 선호 현상에 일단 이과에 진학했다가 문과형 수학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 해성여고 교사는 “이과 선호 분위기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일단 ‘이과 가고 보자’고 한다”고 했다. 서울 혜원여고 교사는 “학생들도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현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 동일여고 교사는 “학부모들이 아이의 적성보다는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최근에는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문과 수학 성적을 인정하는 대학이 적지 않다는 점도 원인이다. 특히 중하위권 대학 및 상당수 여대와 전문대 이공계에는 문과형 수학 응시생도 지원할 수 있다. 이과 학생 중 중하위권은 굳이 이과형 수학을 보느니 문과형 수학에 응시해 백분위 점수를 올리려 문과 수학을 택하는 것이다.

○ 강남 3구엔 없는 ‘무늬만 이과’

‘무늬만 이과’ 비율이 높은 학교를 방치하면 지역 간 학력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서울의 2013∼2015학년도 ‘무늬만 이과’ 비율 상위 50개교는 모두 비강남권이나 낙후지역 학교였다. 강남 3구에는 한 곳도 없었다. 반면 2015학년도 기준 ‘무늬만 이과’ 비율 하위 50개교 중 강남 3구는 50%(25개교), 자사고는 38%(19개교)였다. 같은 시기 전국 하위 50개교도 자사고(40%)나 지역 명문학교가 대부분이었다.

이과 상위권 학생이 진학하는 의·치·한의대 합격생의 68.7%는 강남 3구(2013학년도 기준)다. 신흥 교육 특구인 노원 양천까지 합치면 합격생 비율은 84.3%.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는 “무늬만 이과 비율이 비강남권 학교에만 집중돼 있다는 건 의·치·한의대 합격생 비율 격차도 계속 커진다는 것”이라며 “자녀를 의·치·한의대에 보내려면 이사부터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무늬만 이과’ 비율이 높은 학교는 수업 분위기도 좋지 않다. 문과형 수학을 보더라도 이과이기 때문에 이과형 수학을 배우고 시험도 봐야 하지만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아서다. 서울 구로구 고척고 교사는 “이과반에 다른 과목을 보는 학생이 섞여 있으니 고개를 들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진양고 교사는 “이과반인데 이과형 수학을 보는 학생들은 야간에 따로 강의해주고, 수업 때 문과형 수학을 다루는 교사도 있다”고 말했다.

‘무늬만 이과’ 비율이 높다는 건 이과 열풍이 왜곡돼 있다는 뜻이다. 오성근 전국입학관련처장협의회장은 “이과형 수학 지식이 없다면 대학 이공계에 진학해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며 “좀 어려워도 가르쳐야지 그냥 포기하게 하면 수학뿐 아니라 다른 것도 공부할 수 없다”고 했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기업이 원하는 건 능력 있는 이공계 인재인데 문과형 수학을 배워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를 못 하면 취업도 안 되고 취업이 돼도 본인이 원하는 기업이 아니라 불만족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 2013∼2015학년도 전국·서울 ‘무늬만 이과’ 비율 상·하위 50개교 명단 보기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신규진 인턴기자 연세대 국어국문학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