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글로벌 북카페]작중 인물들을 통해 소포모어 징크스 날린 신예 작가의 의지

입력 | 2016-07-18 03:00:00

英 제시 버턴 신작 ‘뮤즈’




2013년 무명의 연극배우인 제시 버턴이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한 처녀작 ‘세밀화 화가(The Miniaturist)’로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엄청난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 소설은 그해 런던 도서전에서 사흘간 12개국에 판권이 계약됐다. 영국에서는 11개 출판사가 경합한 끝에 피커도어 출판사가 판권을 따냈다. 영국에서 2014년 출간된 이 소설은 세계적으로 100만 부 넘게 팔렸고 ‘워터스톤스 올해의 상’ ‘올해의 신인 소설가상’ ‘올해의 문학상’ 등을 휩쓸었다. 이후 2년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달 30일, 그녀가 신작 ‘뮤즈(The Muse)’로 독자들을 찾았다.

뮤즈는 1967년 런던의 한 구두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오델 바스티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영국 식민지 트리니다드 출신의 흑인 여성인 오델은 작가가 꿈이었지만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격조 높은 스켈턴 갤러리에 취직하고 의문의 여인 마조리 퀵을 만난다. 마조리는 한눈에 오델의 재능을 알아보고 작가의 꿈을 키우도록 도와준다.

오델은 친구의 결혼식 파티에서 로리를 만나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그림 한 점을 접한다. 사자의 머리를 손에 잡은 여자아이와 그녀를 바라보는 또 다른 여자아이를 그린 그림에 강렬하게 이끌린다. 오델의 소개로 이 그림을 본 마조리는 유령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란다. 의문의 그림을 둘러싼 오델과 마조리, 로리의 어두운 과거가 펼쳐진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30년 전인 1937년, 내전이 한창이었던 스페인 남부의 작은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리브 슐로스는 빈의 유명한 미술 중개상이었던 아버지, 런던 사교계의 명사인 어머니와 나치를 피해 이곳에 왔다. 그곳에서 공산주의자이자 교사인 아이삭과 그의 여동생 테레사를 만난다.

올리브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여성 화가를 경시한 당시 분위기 때문에 꿈을 펼칠 수 없었다. 올리브의 재능을 알아본 테레사는 올리브의 그림을 아이삭 이름으로 선보인다. 올리브의 아버지는 딸의 그림인지 모른 채 이를 파리 사교계에 소개한다. 곧 아이삭은 페기 구겐하임을 비롯한 미술품 컬렉터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아이삭이 유명해질 수록 그림 그리기를 향한 올리브의 열망 또한 강해진다. 그리고 올리브는 테레사에 대한 감사와 우정의 마음을 담은 혼신의 대작을 그리는데….

많은 신진 작가는 소포모어 징크스(두 번째 작품의 부진)를 경험한다. 버턴 스스로 그걸 우려한 듯 소설에서 올리브의 대사를 통해 심경을 토론한다. “성공은 예술가의 창의력을 마비시켜. 결국 전작의 틀에 갇혀 끔찍한 모방 작품만을 되풀이해 만들어내지. 그게 바로 대중이 그에게 바라는 것이거든….”

하지만 텔레그래프지는 ‘전작을 넘어섰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창조했고, 필력은 한층 더 안정됐다’고 새 소설을 칭찬했다. 흑인 여성으로 작가를 꿈꾸는 오델과 이룰 수 없는 화가의 꿈을 꾸는 올리브는 다른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 이들은 소포모어 징크스에 굴하지 않고 작가의 길을 오롯이 가겠다는 버턴의 굳은 의지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