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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조선-철강업계 ‘후판 갈등’

입력 | 2016-07-19 03:00:00

STX조선 재고바닥에 조업 중단… 전체 선박 건조비용의 15∼20% 차지
조선 “현금 결제 고수하며 공급 거부”… 철강 “우리도 어려운데 어쩔수 없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인 STX조선해양은 통상 7월 말에 가던 생산직 직원들의 여름휴가를 앞당겨 18일 닷새간의 휴가에 들어갔다. 최근 선박 건조에 필요한 철강재인 후판(厚板) 재고가 바닥나 수주 선박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 인도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철강업체들은 후판 공급 재개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윤근 STX조선해양 법정관리인(영업담당 전무)은 14일 임직원들에게 “일부 자재 수급 등의 문제로 정상적인 조업이 이뤄지지 않아 불가피하게 휴가 일정을 변경했다”며 “휴가 이후 과감한 임금 삭감과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STX조선은 5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수주 잔량 55척 가운데 계약금보다 건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14척은 계약 취소를 추진하기로 했다. 나머지 40여 척은 계약대로 공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10여 척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경우 후판이 없어 공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TX조선 관계자는 “후판이 부족하고 취소 선박도 확정되지 않아 회사로서는 숨고르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전체 선박 건조 비용 중 후판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15∼20%. 선박 건조 특성상 후판 물량이 확보돼야 공정에 들어간다. 초기 공정이 연기돼 인도 시기가 늦어지면 조선업체로서는 거액의 납기 지연금 등을 물어야 할 위험이 높아진다.

조선업 불황 이후 자금난을 겪는 조선사가 늘어나면서 철강업체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한 중형 조선소 관계자는 “작년 자금난을 겪던 중 철강업체를 찾아가 후판 공급을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며 “철강업체들이 과도한 선수금을 요구하며 사실상 현금 결제를 고수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철강업체들은 조선업과 마찬가지로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떠안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조선소에 후판을 공급하는 곳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이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고객사의 신용도를 엄격하게 따져 관리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조선과 철강업 모두 ‘칼 끝에 서 있는 형국’인데 조선사 사정이 어렵다고 손실을 감수하고 후판을 내줄 순 없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일부 철강사는 회생 계획안 부실을 질타하기도 했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STX조선이 채권단에 제출한 회생 계획안에 대금 변제 방안과 절차 등이 명확하지 않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선업과 철강업의 불황이 서로 악영향을 미치면서 일부 조선 협력업체들은 일감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고 있다. 조진만 조선해양플랜트글로벌핵심센터 교수는 “회생 가능성이 큰 기업은 빨리 살리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법정관리 중인 기업에 대해 선박 건조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재 구매 비용을 한시적으로 보조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