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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기자의 야구&]투수가 경기중 삽질… 황당한 프로야구

입력 | 2016-07-19 03:00:00


볼티모어의 김현수가 다행히 부상자 명단(DL)에 오르는 건 피했다. 올스타전 휴식 기간에 상태가 많이 좋아져, 19일 시작되는 뉴욕 양키스와의 4연전 방문경기에 동행한다. 김현수는 11일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내야 땅볼을 치고 1루로 뛰다 햄스트링을 다쳤다.

햄스트링은 허벅지 뒤쪽 부분의 근육과 힘줄을 말한다. 통상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무리하게 힘을 줄 때 손상을 입는다. 그런데 당시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의 진단이 특이했다. 그는 “습기 차고 진흙이 된 타석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야구장 관리 전문가는 “경기 전 타석에 매트를 너무 오래 덮어 놓으면 흙에 수분이 많아져 미끄러워진다”고 설명했다.

만사를 너무 꼼꼼히 챙겨 탈인 쇼월터 감독다운 지적이었다. 사실 하계 스포츠 중에서 경기장 바닥에 가장 민감한 종목이 야구다. 안타와 아웃 등 모든 상황이 1인치 차로 갈리는 종목이라서 그렇다. 그중 타석이나 마운드는 특히 예민한 공간이다. 바닥의 무르고 딱딱한 정도가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심할 경우 부상으로도 연결된다.

2012년 경기 중 공을 던지다 무릎을 다친 SK의 마리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흙이 무른 탓에 깊게 팬 마운드가 화를 불렀다. 반대로 아시아 출신 투수들은 빅리그의 딱딱한 마운드 탓에 고초를 겪었다는 주장도 있다. 류현진과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 아시아 투수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마운드에서 하체 위주로 투구를 해왔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의 딱딱한 마운드에서는 하체 움직임이 제한되면서 밸런스에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제구가 흔들리고, 어깨에 부하가 걸려 부상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빅리그에서 뛰었던 일본 투수 구로다 히로키와 김진욱 전 두산 감독 등의 주장이다. 스포츠의학 전문가들도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고 말한다.

그라운드와 야구 수준이 정비례한다는 점을 파악한 메이저리그는 ‘그라운드 키퍼(Ground Keeper)’라는 전문 인력을 두고 있다. 이들은 최적의 그라운드 상태를 유지하면서, 팀의 전력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인 관리까지 한다. 예를 들어 발 빠른 주자가 많으면 도루 확률을 높이기 위해 1루 베이스 흙을 유독 단단하게 만드는 식이다. 선진 야구의 추세가 그렇다.

그런데 12일 포항구장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장면이 연출됐다. 삼성 투수 차우찬이 직접 삽을 들고 마운드를 정비했다. 마운드 상태가 좋지 않아 경기 중 정비를 부탁했지만, 미덥지 않은 듯 직접 땅을 파헤친 것이다. 해외 토픽감이었다.

국내에서도 NC, 삼성, 넥센 등이 비교적 선진 기법으로 그라운드를 관리하지만 다른 구장들은 아직 그 수준은 아니다. 의지도 부족하고, 전문 인력도 충분치 않다. 지방의 모 구단은 투수들이 구단에 마운드 흙 교체를 요구하고 나설 정도다. 세세하게 따져보면 포항구장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Details)’는 말이 있다. 디테일이 좋다고 품질(야구 수준)이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좋은 품질에는 반드시 좋은 디테일이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미 서른을 넘었고, 이제 1000만 관중을 바라보고 있다. 투수의 삽질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