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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너를 믿는다]위기서 더 냉정… ‘감독 같은 선수’ 온아

입력 | 2016-07-19 03:00:00

<5> 핸드볼 대표 김온아와 최현목 감독




 2012년 런던 올림픽 예선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던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에이스 김온아는 4년 전 아픈 기억을 떨쳐내고 3번째 출전하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온아는 백제고 재학 시절 당시 최현목 코치의 지도하에 체력과 슛 기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수줍음이 많던 소녀는 공만 잡으면 표정이 달라졌다. 운동선수 부모님을 둔 것도 아닌데 공 다루는 감각도 또래 여학생들과는 사뭇 달랐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 열흘 전에 태어난 소녀는 같은 초등학교 핸드볼팀에서 선수였던 친언니(김가나) 덕에 자연스레 핸드볼과 인연을 맺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선수의 길을 걸었다. 동생 김선화도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전국적인 유망주로 각광을 받고, 한국 여자 핸드볼 최고의 스타로 올라선 김온아(28·SK)의 얘기다. 최현목 현 고려대사범대부속고 핸드볼팀 감독(42)은 이런 김온아를 무안북중 2학년 때부터 지켜봐온 스승이다.

○ 신동 소녀에게 놀라다

백제고 시절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포즈를 취한 최현목 감독(뒷줄 왼쪽)과 김온아(앞줄 왼쪽). 최현목 감독 제공

최 감독은 김온아와의 첫 만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2년 9월 학사장교를 마치고 제대한 뒤 무안 백제고 핸드볼팀 코치로 부임한 최 감독은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김온아의 훈련을 우연히 보다가 넋이 나갔다고 한다.

“슛을 던지는데 공이 ‘슉’ 하고 손에서 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남자보다 손목의 유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여자 선수들은 보통 어깨로 슛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 그런 소리가 안 나요. 국가대표 선수들도 손목 스냅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선수가 많지 않은데 온아의 슛을 보는 순간 ‘얘가 대형 사고를 치겠구나’라는 직감이 들었죠.”

최 감독은 이후에도 김온아의 특출한 운동 재능에 여러 번 놀랐다고 한다. 김온아는 상대를 속이는 동작으로 스텝을 잘 활용한다. 폭넓은 좌우 크로스 스텝으로 상대 수비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리거나, 같은 발을 연속으로 빠르게 내딛는 전진 스텝으로 수비를 따돌리기도 한다. 이런 기술이 어린 선수에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지역 남자 핸드볼 팀하고 합동 훈련을 하면 축구를 같이 할 때가 있는데 온아가 핸드볼 스텝으로 공을 몰면서 남자 3, 4명을 거뜬하게 뚫더군요. 주변에서 축구 선수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할 정도였어요. 누가 이런 선수를 키워 보겠다는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죠.”

○ 슬럼프를 잠재우다

핸드볼 명문 백제고로 진학한 김온아를 본격적으로 조련한 최 감독은 곧바로 난감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중학교 무대에서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랭킹 1위였던 김온아가 고교 대회에 데뷔하면서 슬럼프에 빠진 것. 체격이 큰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장기가 잘 통하지 않았다. 친언니가 부상으로 측면 자리로 위치를 바꾸면서 맡게 된 센터백 자리. 장신 수비가 밀집돼 있는 데다 틈만 나면 압박 수비가 들어오는 포지션이라 더 버거웠다.

최 감독은 “체력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체격이 큰 선배들과 맞서다 보니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벽에 온아가 굉장히 힘들어했다. 온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훈련 시간이나 강도를 조금 높이면 ‘왜 안 되는 걸 시키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최 감독은 “일부러 숙소에서도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 ‘지금 당장보다는 몇 년 후를 보자’, ‘너는 최고다’라는 말로 다가갔다”며 “온아가 ‘잘돼서 나중에 부모님께 여러 가지로 보탬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부담을 극복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더불어 최 감독은 기술적으로 김온아의 수비 위치를 중앙에서 측면으로 조정해 수비 부담을 덜어주고 공격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실책이 나와도 질책은 하지 않았다. 대신 김온아가 힘들어했던 웨이트트레이닝 훈련 시간을 늘렸다. 또 점프 슛을 주로 하던 김온아에게 새로운 슛 기술을 장착시켰다.

“여자 선수들은 제자리에서 발을 땅에 붙이고 수비 사이로 슛을 쏘기 쉽지 않아요. 온아의 장점인 스냅을 살려 점프를 하지 않고도 기습적으로 날릴 수 있는 슛 연습을 많이 시켰죠.”

최 감독은 김온아가 결정적으로 고교 무대에 적응하게 된 계기로 중국 전지훈련을 꼽는다. 최 감독은 “온아가 1학년 때 내리 3개 전국 대회 준결승에서 무너졌다. 그러고는 중국에서 보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 오전, 오후로 훈련을 했다. 온아가 지금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강도가 셌다. 그 뒤로 첫 대회인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했는데 그때부터 온아가 여유를 가지더라. 온아가 한결 밝아져 체육관 밖에서도 동기들과 활기차게 지내는 걸 보고 ‘이젠 됐다’ 싶었다”고 말했다.

○ “올림픽서 큰일 낼 것”

최현목 고려대사범대부속고 핸드볼팀 감독이 제자 김온아의 올림픽 선전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조금만 기다리세요.”

최 감독이 경기 때 김온아와 나눴던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은 말이다. 우승을 한 번 경험하고 자신감을 찾은 김온아는 이후 어떤 긴박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지도자를 안심시킬 만큼 경기를 보는 시야와 운영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최 감독은 “전반에 상대에 5, 6골 차로 지고 있어도 온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작전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한번 해 볼게요’라고 하고는 단번에 승부 흐름을 바꿔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온아에게 배운 부분도 많다”고 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도 기대가 크다. 부상이 많았던 김온아가 별 탈 없이 올림픽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일단 한시름은 놨다. 최근에 만난 김온아의 변함없는 모습이 더없이 믿음직스러울 뿐이다.

“다른 제자들은 요즘 만나면 저를 부둥켜안고 수다를 떨고 난리가 나요. 그런데 온아는 ‘오셨어요?’라는 말만 하고 시큰둥해요. 그래도 저는 그런 온아가 좋습니다. 사실 온아는 소리 없이 강합니다. 온아가 고3 때 딱 한 번 대회 결승전에서 1골 차로 져서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 앞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눈물을 쏟아낸 기억이 나요.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오기와 집념이 대단합니다. 올림픽에서 꼭 일을 낼 겁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