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도 카사 리코르디는 눈 딱 감고 푸치니를 후원했으며, 10년 뒤엔 결국 푸치니의 세 번째 오페라 ‘마농 레스코’가 히트를 거뒀고 이후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이란 초대형 연타가 터졌습니다. 사장 줄리오 리코르디의 안목과 인내가 결실을 거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르디의 뒤를 이을 이탈리아 오페라 대표 거장 후보로 푸치니가 일찌감치 ‘단독 추대’ 된 것은 아닙니다. 카사 리코르디의 라이벌인 손초뇨사가 밀었던 마스카니가 있었고, ‘팔리아치’로 성공을 거둔 레온카발로가 있었으며, ‘안드레아 셰니에’의 조르다노, ‘아를의 여인’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로 성공을 거둔 프란체스코 칠레아(1866∼1950) 등 라이벌이 줄줄이 있었습니다.
23일은 칠레아의 탄생 150주년 기념일입니다. 마음 약했던 그의 오페라 주인공들처럼 칠레아도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며 웬만한 일은 양보하는 심성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배짱만 넘치는 사람보다는 마음 약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살기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그가 작곡한 ‘아를의 여인’ 중 아리아 ‘페데리코의 탄식’ 음반을 집어 들어 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