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생명의 상징인 심장도 마찬가지. 건강한 심장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점점 늘어나는 심장질환자들에 대한 치료방법을 찾아가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삼성서울병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공심장 클리닉’을 열었다. 심장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해 생명을 담보하기 어려운데도 심장이식마저 기대하기 힘든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전망이다.
심장 대신 우리 몸 구석구석 혈액 공급
인공심장은 말 그대로 심장 대신 우리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공급하는 기계장치다.
허리벨트에 찬 시스템 조절장치와 전원장치가 가느다란 선을 통해 몸속 인공심장에 전기와 신호를 흘려 보내주면 정상 심장과 마찬가지로 좌심실로 들어온 혈액을 대동맥으로 밀어 넣어주게 된다. 전기모터를 단 일종의 혈액 펌프와 같다.
효과는 건강한 일반인의 심장 못지않다. 심장이 한번 뛰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처럼, 인공심장 역시 정상적인 심장과 같이 분당 최대 10L의 혈액을 1초도 쉬지 않고 뿜어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조양현 교수(왼쪽부터 두 번째)와 순환기내과 최진오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인공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의 치료 방침을 논의하고 있다.
인공심장 이식 후 2년 생존율 80% 육박
인공심장은 일상생활조차 곤란할 정도의 중증 심부전 환자가 우선 고려 대상이다. 딕 체니 미국 전 부통령도 여러 차례에 걸쳐 심장수술을 받았음에도 심장 기능이 회복되지 않자 2010년 마침내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효과는 극적이다. 미국에서 2001년부터 2009년 사이 진행했던 인공심장 관련 임상시험에 따르면, 중증 심부전 환자의 경우 약물치료만 받았을 때는 90% 가까운 환자들이 2년 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인공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2년 생존율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6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현재는 수술 기술의 발전과 인공심장 기기 자체의 업그레이드 등으로 2년 생존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고, 심장 이식을 받기 어려운 고령의 환자나 다른 기저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몸속에 삽입된 인공심장의 모습. 위사진은 2세대, 아래사진은 3세대 인공심장으로 보다 정교하고 소형화됐다. 각각 2013년과 2015년 삼성서울병원이 국내 최초로 성공시킨 바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인공심장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이 관련 분야를 이끌어 왔지만, 삼성서울병원이 2013년 2세대 인공심장 수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게 됐다.
특히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를 비롯한 중증 심부전팀이 지난해 6월 3세대 인공심장 수술까지 성공하면서 국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3세대 인공심장은 현재까지 개발된 인공심장 가운데 가장 앞선 모델로 2014년 치료 목적으로 국내에서 사용이 승인됐다. 이전 세대에 비해 기기가 좀 더 작아졌고, 감염과 출혈 등 부작용 우려는 훨씬 적어졌다. 특히 체구와 심장이 작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적합한 장비라고 알려져 있다.
조 교수팀은 현재 3세대 인공심장 수술을 3차례 성공했다. 지난해 첫 수술 이후 80세 여성 환자의 수술을 성공시키면서 3세대 인공심장 수술에서 아시아 최고령 수술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48세 남성에게서 흉부 7cm, 옆구리 10cm 정도만 절개하여 수술을 진행해 인공심장 수술에서도 최소 절개, 최소 침습이란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의학과 공학의 최첨단 기술의 융복합 결정체인 인공심장을 통해 우리나라가 미래의학을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삼성서울병원이 ‘기계적 생명 보조’의 메카로 떠오른 이유
인공심장과 같이 기계가 환자의 심장이나 폐 기능을 보조하는 분야를 ‘기계적 생명 보조’라고 부른다. 에크모와 인공심장이 대표적이다. 에크모는 인공심장에 비해 수일 혹은 수주간 유지하는 단기 생명 유지 장치이나, 기계가 심장 혹은 폐 기능을 대신한다는 면에서 인공심장과 유사한 면이 있다.
2004년 관상동맥우회술의 명의로 잘 알려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이영탁 교수가 국내 최초로 이동이 가능한 현대적 에크모 시술에 성공한 이래, 전문가들 사이에서 삼성서울병원은 기계적 생명 보조 분야의 성지, 즉 메카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 이 분야의 무수한 국내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며 이 분야의 꽃인 인공심장 분야도 선도해 나가고 있다.
인공심장은 단순히 수술만 잘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인공심장 이식 결정에서부터 이식 후 재활에 이르기까지 순환기내과, 심장외과, 재활의학과 의료진의 다학제 협진이 필수다. 인공심장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를 갖춘 심장 전문 간호사와 약사, 영양사들도 인공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가 새 삶을 얻기까지 반드시 필요하다.
삼성서울병원에는 심장외과 이영탁 교수와 순환기내과 전은석 교수가 2세대 인공심장의 시대를 열고, 이후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 최신 지견을 습득하고 돌아온 심장외과 조양현, 순환기내과 최진오 교수가 3세대 인공심장을 비롯하여 심부전 분야의 첨단의학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렇게 다년간 축적된 지식과 경험은 단지 몇 명의 교수뿐 아니라 전문 코디네이터, 간호사 등을 포함한 다양한 직종의 의료진이 인공심장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되는 풍토를 정착시키기에 이르렀다.
조 교수는 “인공심장 이식에 성공하기 위해선 여러 전문가들의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협력 관계가 필수”라며 “삼성서울병원 인공심장 클리닉은 심장 이식을 받지 못해 치료를 포기했던 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