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친박근혜) 원로 서청원 의원이 어제 8·9전당대회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금은 제가 나서기보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할 때”라고 설명했지만 출마 쪽으로 쏠렸던 그가 마음을 바꾼 가장 큰 이유는 4·13총선을 앞두고 친박 핵심 최경환, 윤상현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경기 화성갑)를 ‘교통정리’해 준 녹음 파일이 공개됐기 때문일 것이다.
녹음 파일에 따르면 두 의원은 1월 서 의원 지역구에 예비후보로 등록해 출마를 준비하던 김성회 전 의원과의 통화에서 ‘대통령 뜻’임을 강조하며 지역구를 옮기도록 종용했다. 그런데도 최 의원은 6일 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난 총선 기간 저는 최고위원은커녕 공천관리위원회 구성과 공천 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며 국민을 속였다. 윤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형, 안 하면 사달 난다니까.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라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정기관을 동원하겠다는 투로 군사독재 때나 쓰던 협박까지 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청와대에 확인했더니 대통령이 공천에 일일이 관여해 특정 지역에 후보를 넣으라거나 빼라고 한 적이 없다”며 “대통령을 팔아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사람들이 문제”라고 했다. 그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당내 경선 후보자를 협박·유인하거나 경선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명백한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해야 하고 청와대는 그것이 과연 ‘대통령 뜻’이었는지 답할 의무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친박 해체 선언을 하거나, 필요하다면 탈당이라도 해서 친박 보스 이미지를 벗는 것이 임기 후반 국정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맹탕이기는 해도 새누리당의 총선 백서에는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수평적 당청관계, 시대정신을 반영한 미래비전 등이 필요하다는 국민 제안이 실려 있다. 전당대회를 앞둔 지금 새누리당이 달라지지 않으면 당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임기가 1년 7개월이나 남은 집권당이 망가지는 건 나라와 국민, 그리고 대통령의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