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악용하는 무차별 신상털이
○ 무차별 신상털이 ‘패치: 폭로의 시대’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영향인가. 2016년 여름 한반도는 ‘패치: 폭로의 시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온갖 △△패치, ××패치들로 뒤덮였다. 출발은 지난달 말 인스타그램 계정 ‘강남패치’. SNS에서 있는 척하는 여성들이 실은 유흥업소 종사자라며 신상털이에 나섰다. 격렬한 논란에도 며칠 만에 팔로어가 1만 명을 넘어섰다.
부리나케 강남패치를 쫓던 요원들은 이후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속칭 ‘노는’ 남성을 고발한다는 ‘한남패치’와 지하철 추태남을 고발한다는 ‘오메가패치’, 심지어 강남패치 운영자 신상을 털겠다는 ‘안티 강남패치’까지 우후죽순 돋아났다.
다행히 최근 몇몇 계정은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근데 진압(?)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SNS가 대부분 물 건너온 회사다 보니 해외 수사기관과 협조공문이 오가는 데만 얼마가 걸릴지 모른다. 강남패치 운영자는 이런 맹점을 파악한 듯 여러 차례 계정을 바꾸며 활개 친다. “훼손될 명예가 있으면 날 고소해 봐. 내 판에선 내 룰뿐”이란 글을 남긴 채.
○ 뻔한 자정 노력 말곤 답 없는 현실
그래? 경찰마저 어렵다면 에이전트도 이만 철수…하려던 찰나. ‘딩동’ 기다리던 메신저 답신이 도착했다.
응답은 바로 ‘안티 강남패치’의 운영자. 여러 계정에 구애를 펼쳤으나 무응답 퇴짜 며칠 만에. 한 패치는 “○○신문이 자꾸 인터뷰하자는데 확 신상을 털어버릴까”라고도 했다. 아, 이건 우리 요원들이 아니다. 딴 데다.
어쨌든 ‘안티…’와의 짤막한 대화.
“지인이 피해를 입은 게 계기였다. 패치에게 무슨 명예나 권리가 있나. 지들도 당해 봐야 한다.”
―신상 털면 똑같은 위법이잖나.
“합법 아닌 거 안다. 하나 방어 차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경찰 수사한다고 피해자 억울함이 풀리나. 익명 폭로는 사람을 죽이는 거와 똑같다.”
그들도 안다. 이건 테러고, 살상이다. 한데 멈추질 않는다. 죄인 줄 알면서도….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정서적 무감각’이라 봤다.
해결책은 있다. SNS 시대에 SNS를 하지 않는 거다. 아니라면 최소한 절제의 노력이라도.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저 SNS를 유희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스스로 내 정보가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 관심을 가져라”라고 당부했다.
뾰족한 결론 없이 퇴근하는 길. 갑자기 ‘아악’ 비명을 지르는 에이전트41.
“어, 어떡하죠. 그동안 숱한 이성과 찍어 올린 사진들. 저도 이제 ‘패치’되나요?”
잠시 쳐다보던 에이전트2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포리원(41), 다들 얼굴은 본단다.”(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