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신승영 에이텍티앤 사장
신승영 에이텍티앤 사장이 버스, 지하철, 택시 등에 쓰이는 교통카드 시스템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고교 때 수학여행으로 서울을 처음 찾았다. 고향과 달리 사람과 빌딩이 많고 활력이 넘쳤다. 서울에 사는 사촌은 얼굴이 뽀얀 데다 선물까지 줄 정도로 잘살아 부러웠다. 빨리 서울로 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서울권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누나가 안 도와주면 서울권 대학은커녕 대학에도 못 들어갈 처지였다. 마침 전자공학 붐이 일어 영남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된 것만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1982년 대학 졸업 후 금성사(현 LG전자)에 합격했다. 인사 발령을 앞두고 구미공장에 배치될 것이라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고향 가까운 곳에서 일하라는 회사의 배려였다. 그는 서울 근무가 아니면 입사를 포기하겠다고 인사팀에 말했다. 결국 서울에 있는 컴퓨터기술부에 배치돼 컴퓨터 수리를 했다. 맡은 일을 똑소리 나게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34세 때인 1989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회사를 나와 에이텍시스템을 창업했다. 직원 2명과 용산전자상가의 23m²(약 7평) 사무실에서 컴퓨터 부품 수리를 시작했다. 같은 고장이 나지 않도록 철저히 수리해 주자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신승영 에이텍티앤 대표이사 사장(61) 이야기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한전의 전력제어반 수리를 맡았다. 고장 나면 미국이나 일본에 보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장치였다. 1000만 원이 넘는 해외 수리비의 30%만 받고, 6개월 걸리던 수리를 한두 달에 끝내자 철도청, 발전소 등도 정밀 전자장치의 수리를 맡겼다. 1993년 직원이 40명이 넘어 개인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했다. 사명(社名)도 ㈜에이텍으로 바꿨다.
외환위기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기업 연구원 등 인재들을 영입해 숙원이던 자체 제품 개발에 나섰다. 1998년 데스크톱 컴퓨터 본체와 막 출시된 액정표시장치(LCD)로 만든 모니터를 결합한 신개념 ‘일체형 PC’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내놓았다. 컴퓨터 놓을 공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이 제품은 국산 신기술 인증을 받았다. 조달 우수제품으로 선정되자 관공서와 금융회사 등에서 대량으로 주문했다.
자신감이 생겨 2003년 LCD TV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 독일 드레스덴에 공장을 세우고 싼 가격을 앞세워 유럽 시장에서 재미를 봤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뒤늦게 시장에 진출해 가격을 확 낮춘 제품을 내놓자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결국 손해를 보고 LCD TV 사업을 접었다.
버스, 지하철, 택시 요금을 카드로 결제하는 단말기와 발매기, 충전기, 정산기 등을 만들어 서울, 대전, 제주, 경북 포항 등에 납품했다. 해외로도 눈을 돌려 2010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콜롬비아, 몽골 등에 교통카드시스템을 수출했다. 지난해 에이텍에서 교통카드시스템 사업 부문을 떼어내 에이텍티앤을 세웠다.
신 사장은 LCD TV 사업의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으로 교통카드시스템 사업에 도전해 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에이텍티앤을 교통카드시스템 분야 세계 1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