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기자
동아일보가 19일자 ‘판화로 둔갑한 고품질 인쇄물’ 기사를 통해 원본복제 아트상품을 작품인 양 전시하는 일부 미술관의 행태를 보도한 직후 전화를 걸어온 서울 환기미술관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이와 같은 일이 오래전부터 수없이 벌어졌는데 기사로 지적된 것은 처음이다. 공론화시켜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술품 위작 관련 취재를 위해 서울 황학동 풍물시장, 답십리 고미술상가, 인사동길 화랑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인들로부터 자주 들은 상품 설명이 바로 ‘판화’였다. 상인들은 “이중섭 박수근 김기창의 유명 작품을 원본과 똑같이 재현한 판화다. 인쇄한 게 아니라 손으로 공들여 작업한 것”이라며 한 점에 수십만 원대의 가격을 불렀다.
하지만 오프셋 인쇄나 석판화가 무엇인지 알고 모르고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계로 복제했는지 손으로 베꼈는지도 관계없다. 원본을 똑같이 따라 만든 결과물은 무엇이든 ‘예술 작품’이 아니다.
‘이중섭이 1954년경 그린 원본을 복제한 인쇄물’이라는 설명 대신 ‘이중섭, AP(artist proof), 석판화, 2014년’이라는 그럴싸한 설명을 내건 전시물을 이중섭이 마주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인쇄물을 만든 이가 액자 하단에 연필로 적은 ‘제작번호’를 ‘진품증명’으로 소개하는 설명을 이중섭이 듣는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복제물을 진품 그림과 혼동하는 가치관을 내버린 뒤에야, 우리 미술시장의 품격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을 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