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금리 담합 4년조사 후폭풍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처분이 ‘사법부 판결’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최근 공정위가 기업들을 상대로 무리하게 조사를 밀어붙였다가 전원회의에서 결론이 뒤집히거나 패소하는 경우가 늘면서 공정위의 사건 처리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이겨도 법률자문 비용은 못 돌려받아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CD 금리 담합 의혹과 같이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심사관 선에서 종결할 경우 향후 감사를 받을 수도 있어 부담이 크다”고 귀띔했다. 이미 조사에 착수한 주요 사건은 일단 전원회의에 넘겨야 향후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이런 식으로 무리하게 사건을 전원회의까지 끌고 가는 바람에 기업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불만이 크다. CD 금리 담합 사건만 하더라도 4년을 조사하고도 제대로 된 증거도 찾지 못한 만큼 애초에 공정위 사무처에서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었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1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피심인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률자문 비용으로 10억 원을 쓴 것과 별도로, 금융사의 생명인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어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최근 공정위 심결 과정에서는 무혐의, 심의 절차 종료 처분이 내려지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공정위는 올 4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오라클의 끼워 팔기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냈다. 3월에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명절 선물세트 가격 담합 건에 ‘심의 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법률자문 비용은 모두 기업의 몫이었다.
공정위가 무리하게 사건을 전원회의로 넘길 경우 기업들로서는 ‘장기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관련 책임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전원회의나 소송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일이 늘면서 공정위 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이다.
남양유업 사건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2013년 10월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제품을 강매하는 ‘밀어내기 행위’를 했다며 과징금 119억6400만 원을 물렸다. 하지만 남양유업이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과징금은 5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공정위는 5억 원을 제외한 114억6400만 원에 이자 6억5200만 원까지 쳐서 돌려줬다. 남양유업이 청구한 소송비용(1600만 원)도 물어줘야 했다.
이런 분쟁이 벌어지면 웃는 쪽은 공정위도 기업도 아닌 대형 로펌과 공정위 출신 전직 관료들이다. 실제 주요 사건의 경우 공정위 사무처가 피심인 측에 심사보고서를 보내면 곧바로 대형 법무법인(로펌)들이 사건 수주 경쟁에 나선다. 이들 대형 로펌은 모두 공정위 출신 전직 관료를 고문으로 두고 있다.
피심인이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으로 갈 경우에는 공정위도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최근 공정위의 변호사 선임료와 패소 사건 소송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공정위의 변호사 선임료는 2013년 14억5600만 원에서 지난해 23억6300만 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공정위가 소송에서 패소해 상대방에 지급한 소송비용도 8300만 원에서 5억60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세종=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