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욱교수, 佛소장 ‘정리의궤’서 확인
프랑스에 있는 한글본 ‘정리의궤’(채색본·위쪽 사진)의 낙성연도에는 채붕(원 안) 안에 취바리와 노장 등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규장각 소장 화성성역의궤(흑백본)의 낙성연도엔 채붕 안에 사람이 없다. 수원문화재단 제공
수원 화성의 완공 기념식(1796년 10월 16일)을 그린 낙성연도(落成宴圖)에서 기존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규장각 소장)의 낙성연도와 다른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흑백본인 화성성역의궤 낙성연도에선 백성들이 지켜보던 두 개의 채붕(彩棚·가설누각)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채색본인 정리의궤 낙성연도에선 각각 춤을 추는 노장(노승)과 기녀, 취바리와 기녀가 그려져 있었던 것. 오른쪽 채붕의 노장은 칡베장삼을 입었고, 왼쪽 채붕의 취바리는 술에 취한 모습의 붉은 탈을 썼다.
전 교수는 “정리의궤를 통해 만석승무를 사람이 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과거 만석승무를 포함한 산희(山희)는 가설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림자 인형극이라는 통설을 뒤엎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기존 학설에선 유득공(1749∼1807)이 ‘경도잡지’에서 산희에 대해 “다락을 매고 포장을 치고, 사자춤 호랑이춤 만석중춤을 춘다”고 적은 기록 등을 인형극이라고 해석했다.
전 교수는 “이번 발견으로 산희가 현재의 봉산탈춤이나 양주별산대놀이의 한 대목인 ‘노장 과장(科場)’과 유사한 공연이었다는 게 밝혀졌다”며 “산희라는 이름은 낙성연도에 나오듯 채붕 위에 소나무가지를 꽂아 산을 표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장 과장은 노승이 소무라는 여성에게 반해 파계하지만 한량인 취바리에게 빼앗기는 내용을 담고 있어 지족선사와 황진이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