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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구로을 투표함에서 나온 ‘軍 부정선거’

입력 | 2016-07-22 03:00:00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으나 선거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에 구로구청 선거부정 항의 농성사건이라는 그늘도 있었다. 1000여 명이 연행되고 200여 명이 구속됐다. 농성 진압 직후 구로구청 5층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하거나 구청 지하 기관실에서 질식해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서울대생이 투신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당했다.

▷사건의 발단은 1987년 12월 16일 대선 투표 당일 오전 서울 구로을 선관위원들이 수상한 부재자 우편투표함을 트럭에 싣고 구로구청을 나서려 한다는 제보에서 비롯됐다.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투표함은 이들의 선관위 점거 44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선관위로 넘겨졌다. 이후 투표함은 봉인된 채로 지금까지 보관됐다. 한국정치학회는 내년 민주화운동 30주년을 앞두고 선관위의 협조를 얻어 어제 29년 만에 투표함을 열었다.

▷개표 결과 4325표 중 노태우 3133표(72.4%), 김대중 575표(13.3%), 김영삼 404표(9.3%) 순으로 나왔다. 당시 구로을 전체로는 김대중 6만6204표(35.7%), 노태우 5만2076표(28.1%), 김영삼 4만7078표(25.4%) 순으로 득표했다. 당시는 부재자 투표를 일반 투표와 혼합해 개표했기 때문에 부재자 득표율은 따로 집계된 게 없다. 이번 개표에서 노태우의 득표율이 너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구별로 비교해볼 수 없어 구로을 선관위원들이 우편투표함을 조작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디선가 부정투표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시 군(軍)에서는 광범위한 부정이 자행됐다. 육군 모 사단 장교 3명이 이를 공개했다가 정보사로부터 린치를 당했다. 나도 당시 같은 부대에서 근무해서 사정을 안다. 선거부정은 중대장이나 대대장 앞에서의 사실상 공개투표로 행해졌고 대리투표도 있었다. 구로구청 농성사건 덕분에 당시 군 부대 선거부정을 증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남았다고 생각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