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이날 오후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지인에게 의외의 전화가 왔다. “민정 쪽에서 나온 얘긴데 우 수석 후임을 스크린하고 있다.” 대통령이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며 참모들에게 동요하지 말 것을 강하게 시사한 뒤다. 우 수석을 명백한 불법의 증거 없인 자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그런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우 수석은 2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해 의혹을 직접 해명했다. 그러나 되레 의구심만 증폭시키는 결과가 나오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짐작됐다. 정치권과 언론의 전방위 공세로 우 수석이 심적 압박을 못 견디고 결국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우 수석을 국회 운영위에 출석시켜 의혹을 해명할 기회를 제공할 뜻을 피력했다. 그러나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우병우 구하기 작전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시간 벌기 꼼수’라고 일축했다. 박 원내대표는 “운영위가 아니라 검찰에 출두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맞는 말이다.
중구삭금(衆口삭金)이란 말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다.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서민들은 하루 생계를 이어가기 고단한 삶을 살고 자식들은 일자리조차 못 구하고 군대 가도 험한 보직만 맡아 생고생을 한다. 반면 우 수석이나 그의 도움을 받아 승진했다는 말이 나오는 진경준 검사장 같은 무리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현실 앞에선 분노하고 절망한다.
진경준의 비리가 집권당의 4·13총선 참패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30대 젊은 샐러리맨들은 주식 대박으로 100억 원대가 넘는 치부를 하고도 무탈하게 검사장 승진을 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가 “개인 간의 주식 거래” 운운하는 말로 그를 감싼 것에 격노했다.
지금 민심은 흉흉하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의 비리가 터져 나올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도 나돈다. 왕조시대에도 민(民)을 끝내 이기는 군주는 없었다. 민주공화정에서 여론을 경청하지 않는 정치 지도자는 결국 설 자리가 없다.
결국 우 수석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늦으면 본인도 더 망가지고, 충성을 바친 대통령과 국정을 더 흔들어 놓을 판이다. 벼랑 끝에 매달려 풀뿌리 붙들고 있을 텐가.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