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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그림 속으로… 다 주고 떠난 아내와 여행을 떠났다

입력 | 2016-07-23 03:00:00

장기기증자 유가족들 미술심리치료 참가記




가족이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유가족들이 양은숙 심리치료사(가운데)와 함께 그림을 통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6월 한달간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참가 가족들은 “가족을 떠나보낸 뒤 슬픔에 잠겨 있던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2011년 백남주 씨(51)는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었다. 건강했던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틀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뇌사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를 두고 두 아들과 처가 식구들이 모였다.

장기기증 얘기를 제일 먼저 꺼낸 건 큰아들이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평소에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얘기했다”며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장기기증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제야 백 씨는 과거 장기기증 얘기를 하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흘려들었던 말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백 씨는 아내의 말을 되새기며 아들의 말에 찬성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공감했다. 단 한 사람, 백 씨의 장모가 고개를 저으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백 씨에게는 아내이지만 장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었다. 반대하던 장모는 다른 가족들의 설득 끝에 결국 동의했다. 그렇게 백 씨 아내의 장기기증이 결정됐다.

장기기증을 위한 적출 수술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심장과 간 폐 각막 등 8개 신체 부위를 기증한 아내는 8시간에 가까운 수술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기증을 위해 장기를 꺼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을 편하게 보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잠시 후회하기도 했었죠.”

아내가 떠난 지 5년이 지나면서 백 씨의 생활습관은 180도 바뀌었다. 쌀조차 씻어본 적이 없던 백 씨는 두 아들을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다. 자영업을 하면서 집안일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면서 조금씩 아픔을 지워나갔다. 그러나 문득문득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한구석으로 올라오는 걸 막기는 어려웠다. 그때 장기기증자의 가족을 위한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얘기를 듣고도 선뜻 참가하기가 쉽지 않았다. 백 씨는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질까 봐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두 아들을 위해서라도 심리상담을 통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려고 참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같이 여행 한번 가보고 싶어요. 예전처럼. 아내가 여행을 좋아했거든요.”

참가자들은 미술심리치료 과정이 모두 끝난 뒤 소감을 그림과 시로 표현했다. 이들은 먼저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덜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희망을 표현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심리치료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백 씨가 그린 첫 번째 그림은 강 건너편 별장에 모여 파티를 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백 씨는 “그림을 통해 평소 아내와 함께 여행을 즐겨 다니던 추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강 건너에서 열리는 파티를 바라보는 사람을 그렸다. 그는 “예전에는 아내와 함께 파티의 일원으로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라는 생각을 하며 슬퍼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백 씨는 나도 누군가와 함께 휴식의 시간을 가졌고 앞으로도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함께 전했다.

치료가 진행되자 백 씨는 아내와 사별 후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며 애쓰는 모습이 싫었다”며 “섣부른 위로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나중에는 위로를 받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3주 차에 접어들자 백 씨는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큰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만 이렇게 힘든 시간을 거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위로받는 법에 대한 노하우도 터득했다. 백 씨는 “받았던 위로 중 가장 고마웠던 것은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이었다. 성당에서 사별 전에 아내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오지 않는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별로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별 후 더 찾아오고 챙겨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물두 살에 떠난 아들…. 처음에는 자살까지 생각했죠.”

김선희 씨(61)는 2010년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인 아들 양진영 씨를 잃었다. 14세 때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던 아들은 심장 박동 유지를 위한 기계를 달고 살면서도 엄마에겐 다정다감한 아들이었다. 김 씨가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도 아들은 ‘잘 지내냐. 밥은 뭘 먹었느냐’며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 씨는 “아들이 심장에 기계를 넣는 수술만 하면 평생 살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아들의 죽음은 김 씨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아들이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김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장기기증을 알리는 안내문이었다. 아들이 병원에 있는 동안 수시로 지나면서 안내문을 본 김 씨는 “장기기증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가족과 상의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뒤 한동안 멍하니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식음을 전폐하고 지내던 김 씨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아파트 복도 난간 아래로 발을 내디디려는 걸 남편이 봤다. 그날로 아들의 흔적이 없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고 말했다.

5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심리치료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은 김 씨 역시 한동안 망설였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또다시 커지는 것이 두려웠다. 남편도 김 씨에게 “가면 또 진영이 생각이 날 것이고 그럼 더 힘들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 치료에 참석했다.

심리치료 첫날 김 씨는 흐르는 강물 저편에 서 있는 사람 한 명을 그렸다. 반대편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을 그렸다. “혼자 있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먼저 간 아들이고, 반대편에는 남아 있는 가족”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아들 곁에 여러 사람을 더 그렸다. 먼저 떠난 아들이 쓸쓸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심리치료 마지막 날 참석자들은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위한 선물 상자를 만들었다. 백 씨는 상자에 해외 풍경 사진과 옷, 화장품, 가방을 넣었다. 그리고 상자 겉에는 웃는 모양의 입과 술병을 붙여 완성했다. 백 씨는 “결혼하기 전 아내와 결혼 10주년에 해외여행을 가자고 약속했지만 막상 10주년이 되니 아이가 어려서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백 씨는 “그래서 20주년에 가자고 했는데 일을 핑계로 점점 시간 내기가 어려웠고 그게 아내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옷을 넣은 이유에 대해 백 씨는 “생각을 해보니 아내에게 직접 사준 게 없었다. 아이들 옷도 제가 산 적이 없다. 지금도 아이들 이모에게 돈을 주면서 아이들 옷 사는 걸 부탁한다. 만약 아내가 지금 같이 있다면 같이 쇼핑을 하고 싶다. 함께 다니면서 옷이며 가방, 화장품 같은 것들을 많이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심리치료 시간에는 참석자들의 가족으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우리 가족의 몫까지 살아 달라”는 말을 전했다. 김 씨는 “장기기증을 받은 분들이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였다”면서 “누군가에게 우리 아이 몸의 일부가 가서 우리 아이 몫까지 살아준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장기기증 가족들을 위해 6월 한 달간 진행한 미술 심리치료 과정에는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뒤 남은 가족 9명이 참여했다. 가족들을 한 달간 곁에서 지켜본 심리치료사 양은숙 씨(55·여)는 “이번 치료 과정이 가족들이 갖는 일종의 애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심리치료 과정이 없으면 유가족들의 에너지가 대부분 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쏠리기 때문에 이런 치료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아픔은 모두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큰 희망이 되었다.”

한 참석자는 한 달간의 심리치료 과정을 마친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그러면서 “떠나보낸 가족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가지만 굳이 다시 꺼내 슬퍼하고 싶지 않아 참석을 고민했다”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없다면 먼저 떠난 가족이 사랑을 나누고자 한 장기기증이 금방 잊혀져 버릴 것”이라고 했다.

정동연 기자 ca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