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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국제부장의 글로벌 이슈&]거짓말쟁이 멜라니아, 퍼스트레이디 자격있나

입력 | 2016-07-25 03:00:00


18일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아래쪽)의 8년 전 연설을 무단 도용했다 망신을 당한 멜라니아 트럼프. 그는 학력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고 있다. CNN 캡처

최영해 국제부장

“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는 아니지만 이제 멜라니아 트럼프를 그만 좀 갉읍시다.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공부한 사람 아닙니까. 직업은 모델이고요. 유명한 사람의 글을 인용 표시도 없이 함부로 따오는 것은 금기(禁忌)란 걸 어떻게 알겠어요. 남편에겐 책임 물어야 할 게 많겠지만, 멜라니아는 이제 그만 놓아주죠.”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사는 매슈 멩켄이라는 독자가 뉴욕타임스(NYT)에 20일 투고한 글이다.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인 18일 트럼프 부인 멜라니아(46)의 찬조 연설이 표절로 밝혀지자 멜라니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멜라니아는 연설 원고 두 단락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이 8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 때 한 것을 고스란히 본떠 왔다가 트럼프 잔칫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세계의 재앙”이라는 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멜라니아 속보(續報)를 쏟아냈다. 재럿 힐(31)이라는 해직 방송기자가 로스앤젤레스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전당대회 생중계를 보다가 트위터에 과거 미셸의 연설 원고와 멜라니아의 동영상 링크를 올리고 “완벽한 표절”이라고 한 것이 발단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인생에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가치를 명심시켰다. 진실된 말을 해야 하며, 약속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가치를 가르쳤다.… 이룰 수 있는 성과의 한계는 자신이 가진 꿈의 힘과 그것을 위해 일하려는 적극성에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미국에선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남의 글 베끼지 말라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초등학생이 수학 숙제를 풀어갈 때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혼자 힘으로 풀었다”는 문장에 꼭 사인해서 내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선 친구에게 숙제를 보여줬다가 들통 나면 베낀 학생은 물론 보여준 사람까지 0점 처리된다. 표절이 반복되면 학교에서 쫓겨난다. 대학 신입생들은 커닝을 하지 않는다는 ‘아너코드(명예규약·Honor Code)’ 맹세부터 한다.

석 달 보름 뒤에 백악관 안주인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 많은 국민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현직 대통령 부인 글을 베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CNN은 하루 종일 멜라니아와 미셸의 연설을 대비해 내보내며 멜라니아를 조롱했다. 4년 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의 대변인 라이언 윌리엄스는 “연설문이 프롬프터에 올라가기 전에 백 번이나 읽고 또 읽었어야 하는데…”라며 혀를 찼다. 에드워드 와서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은 CNN 인터뷰에서 “멜라니아가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한다면 초등학교 4학년 교사도 웃을 일”이라며 “미셸의 문장이 맘에 들었다 해도 자기의 경험과 언어로 바꿨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표절도 문제지만 트럼프 측의 사고 수습은 더 황당했다. 멜라니아는 연설 전엔 “내가 연설문을 대부분 썼다”더니 사고 후엔 종적을 감춰버렸다. 폴 매너포트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은 “힐러리 클린턴의 공작이 아니냐”며 역공을 폈다가 오히려 욕만 실컷 먹었다. 사고 이틀 뒤에야 매카이버라는 연설문 작성자가 나타나더니 “멜라니아는 미셸을 좋아한다. 멜라니아가 불러준 미셸의 연설 문구 몇 가지를 받아 적어 확인 없이 최종 연설문에 넣은 것은 나의 실수였다”며 사죄 성명을 냈다. 트럼프는 “사람은 실수를 하면서 성장하는 법”이라며 매카이버의 사퇴서를 즉각 반려했다. 멜라니아는 이 성명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걸어 놨다. 지금까지 1만2000여 개 댓글이 달렸는데 멜라니아를 욕하는 글로 도배돼 있다. “멜라니아가 미셸을 좋아한다는 말도 거짓말”이라는 댓글도 보인다.

학술 논문과 달리 대중 연설은 표절을 했더라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멜라니아는 트럼프가 “절대 대통령이 돼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그토록 비난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글을 그대로 가져다 썼으니 남편이 참 머쓱하게 돼버렸다. 멜라니아의 거짓말은 처음이 아니다. 멜라니아 공식 홈페이지(www.melaniatrump.com)엔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요염한 사진과 함께 슬로베니아의 대학에서 디자인·건축학사 학위를 받았다는 이력을 적어 놨다. 실제론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를 1년 다니다 중퇴한 것으로 언론 검증에서 드러났다. 그런데도 홈페이지는 아직 그대로다. 일각에선 “멜라니아의 학력 위조는 트럼프가 만든 것 아니냐”는 뒷담화도 나온다. WP는 “족벌체제 트럼프사단의 단면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꾸릴 백악관의 미래 모습을 보여줬다”고 비꼬았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미셸의 ‘미문(美文)’을 대학 중퇴자가 탐한 것을 얼마나 비난해야 할지 난감하다. 멜라니아의 무지와 학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양심 불량과 뻔뻔하기 짝이 없는 트럼프 캠프에 나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최영해 국제부장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