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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종수]공직기강 잡으려면 정부혁신 먼저

입력 | 2016-07-25 03:00:00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모든 것은 서울구치소에서 죄수복을 입은 정운호가 여자 변호사를 폭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심상치 않은 사건을 계기로, 몇 달째 신문조차 읽지 못하고 생활하던 나는 뉴스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기업인의 원정도박, 50억 원의 로비자금을 받은 최유정 체포, 123채의 오피스텔을 사들인 변호사 구속, 재벌가 신영자의 구속이 이어졌다. 뉴스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20억 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현직 검사장의 구속, 청와대 민정수석의 의혹이 튀어나왔다. 공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의 부패 규모와 커넥션에 기가 막힐 즈음, 교육부 국장의 입에서 나온 민중은 개돼지라는 망발이 정점을 이뤘다.

권력과 돈을 거래하는 공직자의 부패나 민중을 개돼지로 보는 교육부 간부의 가치관은 서로 다른 게 아니다. 공직자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운영 메커니즘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개인의 가치관 역시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결과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한 헌법 제7조나 청렴을 강조한 국가공무원법을 들이대는 일도 여기서는 속절없어 보인다.

국무총리는 “공직 기강 해이가 재발하면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사태를 ‘공직 기강’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윗사람에게 굽실거리고, 권력에 아부하는 일은 저들 모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는 모두 멀쩡하다. 단순한 기강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정부 운영의 메커니즘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가치관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를 숙고토록 요구하는 문제이다. 그래야 처방이 보인다.

첫째, 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현재의 검찰과 경찰, 국민권익위원회 체제는 권력의 영향을 너무 심하게 받아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검찰이 자정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가피하다.

7년 정도의 한시 기구로 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하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검사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둘째,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정기관에 대한 통솔의 자리로 운영하는 데서 탈피해야 한다. 민의를 파악하여 수렴하고, 인사 검증을 실시하며, 공직자의 비위를 감찰하는 기구의 하나로 족하다. 권력기관 간에는 건강한 견제 기능이 중요한데, 여기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통솔하는 라인이 부패하게 되면, 전체가 작동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모두가 치명상을 입게 된다.

셋째, 공무원의 선발과 교육 과정을 개혁해야 한다. 행정고시 면접관으로 참여한 현직 국장은 “이것으로 어떻게 가치관을 평가한다는 말이냐”며 분개했다. 나 역시 인사혁신처장을 초대한 세미나에서 “가치관과 역량에 대한 타당성 없는 평가 방법 때문에 고시에서 탈락했다고 누군가가 소송을 하면, 나는 그 사람의 증인으로 출석하겠다”고 고백했다. 가치관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현재의 면접을 혁신적으로 수술하는 게 필요하다.

최근 성주 군민들이 사드 문제로 격렬히 저항하는 이유도 단순히 전자파의 유해성 때문만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직의 부패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거기에는 깔려 있다.

아무리 능률과 효율을 부르짖는 시대가 되었어도, 청렴과 근본 가치관에서 하자가 터지면 모든 게 허사다. 공직 기강의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가치관과 정부 운영의 메커니즘을 점검할 때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