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크루즈선 타고 방한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 3400명 전원이 한 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겼다고….’(동아일보 7월 19일자 B5면)
얼마 전 처음 한국에 온 홍콩 지인. 서울 명동 길을 걷다 멀뚱히 쳐다본다.
“저기 큰 광고 걸린 빌딩은 뭐야?”
영어가 짧았나. 내내 갸웃거린다.
“근데 한국인은 다들 영어나 중국어 잘하나 봐.”
“글쎄…, 왜?”
“너희 나라 백화점인데 한글이 안 보여서.”
“이것 봐, 있잖아! 내가 뭐랬….”
친구의 접대용 ‘썩소’. 민망, 당분간 연락 말자.
다음 날, 다시 명동. 다른 백화점도 ‘도긴 개긴’이다. 모두 외국어고 한국어는 고작 ‘△층 ××홀’ 정도. 명동대로는? 25년 산 도시에서 까막눈이 돼버렸다. 한 화장품가게 점원을 붙들고 왜 이러냐고 따져봤다. “선머(什요·뭐라고요)?” 헉, 한국말 못 한다.
“그런 지 꽤 됐습니다. 중국인 관광객 위주다 보니. 요샌 중국동포나 중국인 아르바이트생이 훨씬 많고 시급도 높아요. 간판도 불법이라 벌금 물며 하는 겁니다. 내국인에겐 불편한 점이 적지 않죠. 정말 큰일이에요.”(이동희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
뭐, 그래도 관광객이 만족하면 감수할 불편 아닐까. 지난해 서울에 왔던 중국계 캐나다인 A 씨를 메신저로 불러냈다. 어쨌든 편하지 않았느냐고.
“솔직하게? 별로였어. 중국 외갓집 들른 느낌. 이국적인 맛이 없다 할까. 말 좀 안 통해도 그게 또 재미인데. 하나 더. 개인적으로 한글 참 예뻐. 근데 ‘한국인은 모국어 싫어하나’ 싶었어. 간판은 중국어, 입은 티셔츠는 죄다 영어던데.”
2차 붕괴. 맞다. ‘과티(학과 티셔츠)’ 이후 한글 옷 쳐다본 적도 없다. 이거 문화적 자존감 문제였나. 한국관광문화연구원의 최경은 박사에게 심란한 맘을 털어놨다.
“동전의 양면이죠. 정체성 유지와 관광 활성화는 원래 균형 잡기 어렵습니다. 최근 유커(遊客) 잡기 열풍은 세계적 현상입니다. 일본도 유럽도. 관광객이 줄면 왜 더 적극적이지 않았느냐고 하겠죠. 항상 고민할 이슈지만 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긴. ‘친절하다’와 ‘배알도 없다’는 한 끗 차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언젠간 아름다운 한글 가게 앞 외국인 단체촬영을 볼 날도 오려나. 먼저 인터넷에서 한글 티셔츠부터 찾아봐야겠다. 그나저나 이럴 땐 뭔 노래가 당길까.
#02 스팅 ‘Englishman in New York’(1987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