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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컬처]잘록한 허리… 풍선같은 가슴… 게임속 민망한 여성 캐릭터들

입력 | 2016-07-27 03:00:00

‘서든어택2’ 선정성 논란을 해부하다




《 검은 슈트 한 장 달랑 걸치고 2월부터 7월까지 지구의 문화를 우주로 전송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네 명의 에이전트 2, 5, 7, 41. M.I.C(맨 인 컬처·Man in Culture) 본부는 최근 폭염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더위를 식힐 망사 소재 슈트 한 벌이라도 보내줄 생각은커녕 이들이 보내온 보고서의 치명적 결함을 해결하겠다며 모종의 대책을 마련했다. 4명의 에이전트는 모두 ‘XY염색체(남성)’ 아닌가! ‘맨스플레인(man(남자)과 explain(설명하다)을 합친 신조어)’에 이어 ‘우먼스플레인’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M.I.C는 W.I.C(우먼 인 컬처·Woman in Culture)와 긴급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

XX염색체를 가진 ‘설명충’(‘무엇이든 설명하려 드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 임무를 받고 유부녀와 워킹맘으로 위장해 지구로 침투한 에이전트 23(이서현 기자)과 31(장선희 기자). 이들이 잠입한 서울 한 PC방. 에이전트 31은 화면 속에서 이상한 포즈로 흐느적거리는 여자를 발견했다.

넥슨의 신작 게임 ‘서든어택2’의 캐릭터 ‘미야’와 ‘김지윤’이 그 주인공. 총알을 피하는 데 최적화한 가는 허리, 에버랜드 하늘을 날아다니는 풍선 같은 가슴에 23과 31이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총에 맞은 캐릭터는 게이머에게 엉덩이를 보이며 망측한 자세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쓰러진 시체가 부르르 떠는 장면을 보고 에이전트 23, 31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여성 캐릭터는 꼭 벗다시피 해야 하나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논란이 된 ‘서든어택2’ 게임 속 한 장면. 인터넷 화면 캡처

서든어택2는 PC방에서 숙식하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거대한 ‘논라너’(논란이나 물의를 일으킨 주체)로 등극했다.

“저도 어릴 때 호기심에 여자 캐릭터를 산 적이 있어요. 캐릭터를 사면 엉덩이나 가슴이 돋보이는 야한 춤을 추는 ‘효과’ 기능도 있거든요. 솔직히 그냥 야한 잡지나 ‘야동’ 보는 것처럼 소비하는 거죠.”(서울 양천구 20대 A 씨·남)

“여자 캐릭터는 꼭 벗어야 하나요? 차라리 비슷한 게임 ‘오버워치’를 해요. 벗지 않아도 ‘걸 크러시’의 매력이 넘치는 여자 캐릭터가 많아요.”(경기 수원시 20대·여)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6년 게임이용자실태조사 보고서를 펼쳤다. 온라인 게임을 최근 1년간 한 적이 있는 남성 응답자는 51.2%였다. ‘여성’(25.2%)의 두 배에 이르렀다. 게임회사에서 남성에게 초점을 맞춘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였다. ‘삼국지’ 게임 모델이 왜 유비가 아니라 초선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어쨌든 게이머들이 건전한 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심의 등급을 강화했어야 하는 것인가. 에이전트 23, 31은 해답을 찾기 위해 게임콘텐츠등급심의위원회를 찾았다. 지난해 게임 개발사 넥슨은 첫 심의 때 캐릭터 미야와 김지윤을 제외한 기본 캐릭터를 제출해 ‘15세 이용가’ 등급을 받은 뒤 두 캐릭터를 추가했다. 이것으로 논란이 일자 다시 해당 캐릭터를 삭제했다.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등 항목을 고려해 문제 장면이 게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지 등을 보고 있는데 게임업체가 이용 연령대를 고려해 자정 노력을 기울여 주셨으면 해요.”(김성심 심의위원)

○ ‘성(性) 상품화’는 지구적 이슈

넥슨이 최근 발표한 게임 ‘서든어택2’의 캐릭터 ‘미야’는 선정성 논란으로 최근 삭제됐다. 인터넷 화면 캡쳐

게임 속 여성 캐릭터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만이 아닌 지구적 차원의 문제였다. 여성 게임 인구가 늘어나고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모든 장르에서 성의 획일화, 대상화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게임일 뿐인데 왜 성차별이나 정치관을 끌어들여?’라는 말은 정말 전형적인 반응이에요.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상의 캐릭터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게임칼럼니스트 폴 버호벤·2014년 TED 강연 ‘Sexism in Gaming’ 중에서)

미국 블리자드사 역시 게임 ‘오버워치’ 속 여성 캐릭터의 특정 포즈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이용자들의 비판이 일자 포즈를 바꾼 적이 있다.

두 에이전트는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한 관계자로부터 W.I.C로 보낼 첫 보고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게임 ‘블레이드&소울’은 북미 버전 개발 당시에 개발자들이 ‘현지 이용자의 기호에 맞춰 노출이나 체형, 의상 디자인에서 여성성이 부각되면 남성성도 함께 부각돼야 한다’는 논의를 벌였다.

“아바타의 묘사는 이용자들의 문화권에 따라 편차가 크듯 ‘섹시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요. 블레이드&소울은 북미 시장 버전에서 주인공들의 얼굴이나 의상도 변화시켰죠. 이용자들이 그걸 선호하니까요.”

W.I.C 보고서에 포함시킬 사례도 발견했다. 여전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게임 ‘툼레이더’의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 역시 20년째 오지를 헤맨 노하우로 결국 큰 가슴과 민소매를 버리고 ‘생존형’ 패션을 선보이고 있지 않은가. (다음 회에 계속)
 
▼‘적절한 옷’으로 갈아입은 라라▼

‘툼레이더’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의 초기 그래픽(왼쪽)과 최근 버전의 그래픽. 오지 탐험가임에도 탱크톱과 짧은 바지를 입었던 라라는 약 20년을 거쳐 원래 역할에 적합한 복장으로 변화했다. 툼레이더의 게임 개발에 참여한 리애나 프래쳇은 트위터를 통해 “적절한 복장을 한 (게임 속) 여성 캐릭터가 희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동아일보DB
 
이서현 baltika7@donga.com·장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