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축구 한류’가 넘실거리고 있다. K리그 FC서울 사령탑이었던 최용수 감독이 지난달 장쑤 쑤닝으로 옮기면서 중국 슈퍼리그 16개 팀 중 5개 팀의 감독이 한국인이 됐다. 리그 최다다. 중국인 감독(4명)보다 많다. 지난해만 해도 슈퍼리그에는 한국인 사령탑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박태하 감독의 옌볜 푸더가 2부에서 1부인 슈퍼리그로 승격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박 감독은 2부 리그 꼴찌였던 팀을 1년 만에 정상에 올려놓으며 ‘한국인 감독’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 줬다. 이후 홍명보 감독과 장외룡 감독이 각각 항저우 그린타운, 충칭 리판과 계약했고 ‘중국통’ 이장수 감독은 5월 최하위로 강등 위기에 몰린 창춘 야타이의 소방수로 나섰다.
▷장쑤를 제외한 네 팀은 ‘축구 굴기’를 내세우며 차이나 머니를 쏟아 붓고 있는 구단들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시즌 창춘은 8위, 충칭은 10위, 항저우는 11위에 머물렀다. 우승보다는 슈퍼리그 잔류가 목표인 팀들이다. 9위였던 장쑤는 지난해 12월 중국 굴지의 가전기업 쑤닝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면서 ‘빅 클럽’으로 거듭났다. 겨울 이적시장에서만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장쑤는 최 감독 부임 후 2위로 뛰어올랐다. 10경기를 남겨 놓은 26일 현재 1위인 광저우 헝다와의 승점 차는 7점이다. 초반 11경기 연속 무승으로 부진했던 홍 감독의 항저우도 최근 6경기에서 4승 1무 1패로 선전하고 있다. 최하위였던 순위도 12위로 올랐다. 충칭과 옌볜도 최근 성적이 나쁘지 않다.
▷축구는 국가 간의 큰 수준 차이로 해외 지도자 영입이 활발한 종목이다. 올해 슈퍼리그에서 불고 있는 축구 한류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는 데는 한국인 지도자가 적격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손박사싸커아카데미’의 손외태 대표는 “한국인 지도자들은 상대적으로 영입 비용이 덜 드는 데다 같은 동양 문화권이라 심리적으로 친근한 느낌을 준다. 유럽이나 남미 출신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하다. 또 ‘공한증’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한국 축구가 중국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중국인이 많은 것도 한국인 지도자 러시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지도자들의 슈퍼리그 진출은 1997년 최은택 전 국가대표팀 감독(작고)이 옌볜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그가 부임 첫해 팀을 역대 최고 성적(4위)으로 이끌자 이듬해 차범근, 김정남, 박종환, 이장수 감독 등이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 충칭을 맡았던 이장수 감독은 FA컵에서 우승하며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후 베이징 궈안, 광저우 헝다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때의 ‘축구 한류’는 오래가지 못했다. 최 감독과 이 감독을 빼곤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한 데다 빅 클럽들이 유럽과 남미 출신의 유명 지도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 후 약 20년 만에 중국에 ‘축구 한류’가 재현됐다. 올해 최용수 감독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중하위권 팀뿐만 아니라 상위권의 빅 클럽들도 한국인 지도자들에게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는 몇 명의 한국인 감독이 슈퍼리그에서 활약하게 될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