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부터 맥아와 홉을 끓이는데 사용했던 오비맥주 담금솥.
1876년이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맥주가 들어온 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맥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났고, 1933년 우리나라에도 맥주 회사가 생겼다. 그해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세웠고, 기린맥주는 서울 영등포에 맥주공장을 짓고 소화기린맥주를 설립했다. 조선맥주는 하이트맥주로, 소화기린맥주는 동양맥주 오비맥주로 이어졌다.
서울 영등포역 바로 옆 영등포공원은 오비맥주의 공장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가면 커다란 담금솥이 있다. 오비맥주 공장에서 맥아와 홉을 끓이는 데 사용했던 대형 솥을 공원에 전시해 놓은 것이다. 1933년 솥을 만들어 1996년까지 사용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제조용기인 셈이다. 나사가 몇 개 빠지고 약간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열차를 타고 영등포를 지날 때 늘 차창 밖으로 스쳐갔던 맥주공장의 풍경. 우리 일상의 음식문화 가운데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은 맥주. 그 역사를 영등포 공장 터에서 제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공장 건물도 몇 개 남겨 놓고, 여기에 기념관과 박물관도 꾸미고 이런저런 맥주 체험공간도 마련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맥주공장의 굴뚝 한두 개도 살려 놓았다면, 지금 멋진 풍경이 되었을 텐데. 1997년 이천으로 공장을 옮길 때 공장의 굴뚝을 남겨 놓으려 했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했다고 한다. 안전도 안전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인식 부족, 의지 부족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흔적을 너무 쉽게 없애고 훼손해 왔다. 영등포공원에서 만나는 담금솥 하나로는 우리 맥주의 역사를 제대로 체감할 수 없다. 담금솥은 그래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삿포로 팩토리가 부러운 까닭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