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의 컨벤션센터에 한 중국인이 연단에 섰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제30회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 개막 이틀째 날이었죠. 이 포럼에 중국 민간기업인이 강연자로 섭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중국인으로서는 2005년 주한중국대사와 2006년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장이 강연한 적은 있었다고 합니다. 전경련과 함께 양대 경제단체라 할 수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도 ‘CEO 하계포럼’에 중국인을 무대에 세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이는 켈빈 딩 한국화웨이 대표였습니다. 화웨이는 삼성전자, 애플에 이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3위에 올라 있죠. 최근 삼성전자에 대해 스마트폰 관련 특허 소송을 시작하면서 더 주목받고 있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딩 대표는 중국어로 약 20분간 강연을 했습니다. 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화웨이가 미래 정보통신기술(ICT) 시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딩 대표는 화웨이가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력을 확대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비 인터그레이티드(Be Intergrated)’ 전략을 소개했습니다. 화웨이는 실제 20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와 함께 산업부문 사물인터넷(IoT) 기술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이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딩 대표는 “화웨이에는 이미 전 세계에서 17만 명이 일하고 있고 이 중 절반 정도가 연구개발(R&D) 인력”이라며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지난해 15.1%까지 높아질 정도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그 결과 국제 표준화 작업에서도 화웨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딩 대표가 국내에서 가장 큰 기업인 포럼에 초청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 같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만큼은 중국의 위상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상징적 장면이니까요.
중국은 이미 많은 산업부문에서 한국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값싼 인건비’가 유일한 경쟁력이던 중국이 ‘기술력’이란 강력한 무기까지 갖추게 되면서부터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과거 미국, 일본, 독일 기업들을 벤치마킹 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중국 기업들이 가는 길을 눈여겨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지만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현실입니다.
평창=김창덕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