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고생길 생각하니
“아이가 고3이라 올여름 휴가를 안 가지만 딱히 아쉽진 않아요. 이제는 빡빡하게 여행 가는 것도 피곤해요. 전에는 휴가 때 캠핑도 하고 가족이 먹을 음식도 직접 준비하고 했는데, 휴가 준비도 피곤하더라고요. 이제는 저도 같이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휴가를 가더라도 비수기에 가지, 여름 성수기에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노미선 씨(47·주부)
“원하는 날짜를 찾고, 어렵게 찾았는데 비싸면 지쳐 버려요. 성수기 숙박비는 비싸잖아요. 예약도 힘들고요. 생각처럼 편하게 여행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주저하죠. 술 한잔하고 밤늦게 영화 한 편 보는 게 최고죠.”―이시호 씨(55·자원봉사자)
“휴가를 자율적으로 쓰라고 하는데 제가 쉬면 업무에 차질이 생기거든요. 눈치 보이죠. 휴가 써도 딱히 할 게 없고요. 일주일 쉬어도 내내 집에서 잠만 자면 뭐 합니까? 구체적 계획도 없고, 일정도 애매하니까 굳이 휴가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노는 걸 또 다른 일처럼 할 필요는 없잖아요. 하루 연차를 써서 주말과 붙여서 쉬는 걸로도 충분해요.”―지수현 씨(26·무역회사 직원)
가족, 연인 일정 맞추자니
여행을 잘 못 간다고 하니 각오하고 있습니다.”―김주영 씨(39·사진 편집자)
“미혼이에요. 결혼한 동생은 가족들과 휴가 가는데 짝꿍 없이 거기에 끼고 싶지 않아요. 친구들도 다 결혼해서 가족이 우선이랍니다. 예전엔 친구들끼리 계를 부어 여행 가는 모임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행 대신 식사하는 모임으로 대체했어요.”―김미란 씨(33·학원 강사)
사는 곳도 휴가지다
남들이 우리 집으로 휴가를 오는 편이었죠. 오히려 도시에서 영화, 전시회, 공연을 보러 가거나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일산 호수공원처럼 한적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송모 씨(47·주부)
“지난해와 올해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겼어요. 최상층의 바에서 식사하며 야경을 보고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거나 호텔과 이어진 쇼핑몰에 가죠. 도심에서 자유롭게 쉬는 기분이 색달랐어요. 가까운 외국에 있는 기분이랄까요. 아직 못 가 본 호텔도 많고 호텔마다 서비스도 달라서 매년 가고 싶어요.”―이승아 씨(28·회사원)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고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상가가 8월 초에 일주일 쉬어요. 그때 전 무급휴가 시기인 셈이죠. 올해는 일이 너무 없어서 휴가 갈 수가 없습니다. 가족 3명이 휴가를 떠나도 50만 원은 들걸요.”―유동욱 씨(62·남대문시장 오토바이 퀵서비스 배달원)
“일할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26일이에요. 돈을 벌어야 하니 열심히 운행해야죠. 휴가는 가 본 지 오래됐어요. 그렇게 한 달 해 봐야 150만∼200만 원이죠. 회사에서 입금해 달라는 만큼만 벌어 일당 받아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요. ―이동민 씨(54·택시기사)
“정작 휴가는 못 가는데 휴가 가는 사람을 가장 많이 보는 게 우리예요. 여유가 있어야 휴가를 가죠. 관광버스 운전해서 다니는 게 우리한텐 휴가 겸 일이죠.”―정영식 씨(54·관광버스 기사)
너무나 바쁜 여름
“신생 기업 특성상 규모는 작은데 일은 많으니 자리를 비울 수 없죠. 휴가를 1박 2일로 짧게 다녀와도 노트북 지참은 필수입니다.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작업해야 하니까요.”―윤성귀 씨(29·스타트업 ‘모인’ 대표)
“방학에 취업 스터디와 아르바이트를 하니 정신이 없어요.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전날까지도 마음이 불편해 스트레스만 받았죠. 공부하려고 책까지 챙겼지만 결국 짐만 됐고요.”―권민지 씨(24·대학생)
“유원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5월부터 11월이 대목이에요. 휴가는 꿈도 못 꾼답니다. 가더라도 겨울에 가지만, 풍경도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죠.”―박흥수 씨(46·남이섬 ‘사랑닭갈비’ 사장)
“게스트하우스 일은 반쯤 노는 일이라 적성에 맞아요. 휴가는 못 가도 손님들 모시고 야경투어나 낚시도 가고, 삼겹살 파티도 하며 같이 놉니다.”―김태호 씨(36·게스트하우스 사장)
“레저스포츠 하는 가장이 있는 가정은 여름철 대목에 휴가를 못 가요. 남들은 휴가길 길이 막힌다, 바가지요금이 심하다고 투덜대지만 전 그게 행복한 비명으로 들리네요.”―정찬마 씨(55·스페셜포스 패러글라이딩 팀장)
“매일 노량진 고시촌의 독서실에서 11시간씩 공부해요. 하루 정도야 놀 수 있겠지만 삼계탕 식당을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휴가를 갈 수 없습니다. 성수기라 손님이 몰리는데 일도 안 도와주면서 놀러 가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죠.”―이한별 씨(26·취업준비생)
오피니언팀 종합·조혜리 인턴기자 성균관대 의상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