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싱크탱크인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의 언론NPO는 2013년부터 매년 ‘한일(韓日) 국민 상호인식 조사’를 공동 실시한다. ‘일본이 좋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작년 15.7%에서 올해 21.3%로 늘었다. ‘한국이 좋다’는 일본인도 23.8%에서 29.1%로 증가했다. 부정적 답변이 여전히 더 많지만 종전보다는 개선됐다. 이숙종 EAI 원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었던 지난해 양국이 11월 정상회담과 12월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낸 노력 등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안부 갈등’은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핵심 변수였다. 반(反)인권적 가해에 대한 일본의 외면과 이에 대한 한국의 반발이 충돌하면서 양국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10억 엔(약 107억 원)을 내고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재단을 설립한다는 데 합의했다. 양국 모두 일각에서 반발했지만 현실적으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차선의 합의였다.
▷위안부 지원을 위해 어제 출범한 ‘화해·치유 재단’ 김태현 이사장이 20대 남성으로부터 캔 스프레이 형태로 된 캡사이신을 얼굴에 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캡사이신은 고추에서 추출되는 휘발성 화합물로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다. 여성가족부 공무원 3명과 기동대 직원 1명도 함께 병원으로 옮겨가 치료를 받았다. 불행 중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지만 아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일 간 합의에 불만을 갖거나 재단 출범을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테러에 가까운 과격한 행동을 벌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폭력적 수단은 국민의 외면을 받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피해자들의 상처를 덧내는 부적절한 발언이 더는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두 나라 민관(民官)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