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만남 시작이자 가벼운 대화의 출발 이젠 기호품을 넘어 생활관습까지 바꿔 하지만 너무 비싼 가격… 이것은 커피의 허영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첫인사를 ‘커피 한잔’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말을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 커피야말로 편한 만남의 시작이요, 가벼운 대화의 출발이다. 예전에는 사내들끼리 만나면 대개가 ‘막걸리 한잔’ 또는 ‘소주 한잔’하자는 말로 시작했다. 서로 서먹서먹하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한 대 하실래요?’ 하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커피 한잔’은 누구든지 서로 만날 때 하는 인사말처럼 편하다.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쉽게 던질 수 있는 말이 ‘커피 한잔’이다.
이른 아침 지하철역에서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이 빠져나온다. 역 근처에 문을 연 작은 커피가게 앞에 젊은 여성이 서 있다. 커피 한 잔과 베이글 한 개를 작은 봉지에 담아들고 잰걸음으로 골목길로 접어든다. 어떤 젊은이는 아예 가게 앞에서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커피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점잖게 생긴 중년신사도 가게 안으로 들어와 빵 한 개와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바쁜 도시인들의 아침 식사가 이렇게 간단하게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다. 점심시간이 되면 번잡한 도시의 빌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각자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모습도 재미있다. 대부분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있다. 당연히 식사 후에는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녁 무렵의 카페는 왁자지껄하고 사방이 소란스럽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사람들 앞에 커피잔이 놓여 있다. 커피잔 앞에서는 모두가 들떠 있고 신이 나고 진지해지기도 한다. 커피는 이렇게 다채로운 일상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풍경을 커피 향에 어울리는 색깔로 채워 놓는다.
일상의 커피 혹은 커피의 일상을 말한다면,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표할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커피를 즐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단순한 기호품은 아니다. 커피의 종류도 가지가지로 많아진 데다가 커피를 즐기는 방식도 사뭇 서로 달라지고 있다. 커피가 사람들의 생활 관습도 바꾸어 놓고 있으며 일하는 태도까지도 변화시킨다. 요즘 모두가 불경기라고 야단이지만 전국에 걸쳐 커피숍이 가장 많이 늘어나고 있단다. 변두리 작은 동네 골목에도 한두 해 사이에 새로 생긴 커피숍들이 성업 중이다. 커피를 만들고 시중드는 바리스타 교육에 퇴직한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성황이란 뉴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네 커피값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다. 도심의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이 설렁탕 한 그릇 값에 이를 지경이니, 이건 커피의 허영이다. 이렇게 비싼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다면 이제는 커피의 경제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왜 우리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내면서 커피를 계속 마셔야만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상의 커피란 말은 주머니 사정이 맞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만 고급한 커피의 문화라는 것도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 아닌가. 그럴 때는 이런 인사도 마음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다.
‘커피 한잔 드실래요?’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