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에 쌓인 선물들 김영란법 시행(9월 28일)을 약 두 달 앞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에 의원실로 배달된 수박, 감자, 복숭아 등 선물박스들이 쌓여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는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전국 각지에서 제철과일 등 특산품들이 종종 배달되곤 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9월 28일 시행만 남았다. 김영란법은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불분명해 시행 초기에는 상당 기간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법을 우회하려는 편법과 꼼수, 이해관계가 얽힌 투서 남발 등의 부작용이 빚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혼란과 편법을 방지하려면 시행령을 세밀하게 다듬어야 할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와 위법을 적발·수사할 경찰, 검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시행까지 두 달이 남지 않은 가운데 각 기관 내부에는 준비 부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 권익위, 400만 명 감당할 인력 부족 우려
권익위는 법 시행일에 맞춰 청탁금지제도과(7명)를 신설하기로 행정자치부와 협의를 마쳤다. 하지만 4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법 적용 대상에 비해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익위 관계자는 “신고자의 내용을 토대로 기초적인 사실관계만 확인해서 수사·감사·감독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계획이기 때문에 당장 인력이 대거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규정이 모호해 혼선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대국민 홍보도 강화할 계획이다. 권익위 홈페이지에 게재된 청탁금지법 해설집을 직업별(공직자, 교직원, 언론인 등)로 세분한 뒤 구체적 사례를 담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특정 사례에 대해 아직 세세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당장은 사회 상규에 비춰 처리하면 될 것”이라며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 경찰, 뒤늦은(?) 수사매뉴얼 배포-교육
김영란법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경찰청은 9월 초·중순 김영란법 수사매뉴얼을 일선 경찰서에 배포한다. 수사매뉴얼에는 법의 주요 내용, 벌칙규정 해설, 수사지침, 현장 경찰 Q&A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수사매뉴얼 배포 시기와 전국 경찰서 수사관 교육 일정 등을 고려하면 합헌이 충분히 예상된 상황에서 경찰이 너무 느긋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국민권익위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청탁금지법 해설집을 참고해 수사매뉴얼을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경찰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서울 한 경찰서 수사과 간부는 “경찰청이 하루빨리 구체적인 지침을 하달해야 미리 준비할 텐데 지금은 어떻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지 걱정만 하고 있다”며 “접대비를 특정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어 수사 부담만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지방경찰청 간부는 “법원 판례가 쌓일 때까지 사실상 혼란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 검찰, “먼저 나서서 수사는 안 해”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에서 올해 1월 출범한 사건 처리 기준 TF가 양형 구형과 함께 새로운 시행령에 따른 처리 기준을 정리하고 연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검 감찰본부도 김영란법과 청렴에 대한 검찰 구성원 교육과 감찰기준 마련 등 내부 단속을 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고소 고발이 들어오면 사건을 처리하겠지만 검찰이 먼저 나서서 김영란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골라내거나 인지수사 하는 식으로 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 단속을 벌일 일선 경찰의 혼란을 조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사건 처리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사실상 사회의 모든 영역을 감시 감독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된 검찰을 적절히 관리 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의혹 사건이나 진경준 검사장 구속 기소 사건 등으로 정치권은 검찰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김영란법으로 오히려 검찰권이 강화된 데에 대해 정치권은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다.
조숭호 shcho@donga.com·박훈상·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