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아라벨라 카터-존슨 지음·노혜숙 옮김/392쪽·2만 원·엘리

아이리스는 붓을 쥐고 있는 동안에는 평소의 불안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윗옷 입는 것을 싫어해 해변에서 허리에 두르는 사롱을 망토처럼 묶고 그리기에 몰두하는 아이리스. 북하우스 제공

그림을 그린 소녀는 올해 일곱 살인 아이리스 그레이스. 아이 엄마인 저자는 말타기를 좋아하고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모험을 즐기는 영국 여성이었다.
집안의 첫 손주로 태어난 아이리스는 잘 자지 않았다. “다다”, “마마” 외에는 말하지 않고 같은 그네만 타길 고집하는 딸을 보며 엄마의 불안은 커져 갔다. 지난한 기다림 끝에 받은 검사 결과는 두 살인 아이가 자폐라는 것. 원인과 완치 가능성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질환이었다. 엄마는 “자폐는 밤도둑처럼 찾아와 소중한 뭔가를 훔쳐 달아났다”며 절규했다.
사설 유아원은 ‘자폐’라는 말만 들어도 대기자 명단을 닫아버렸고, 특수 보육원은 집에서 너무 멀었다. 유아원에서 다른 아이가 갖고 노는 기차장난감 소리에 자지러지는 아이리스를 안고 울면서 뛰쳐나와야 했다.
저자의 솔직한 서술은 자폐아를 키우는 일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잠자고 말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보통의 아이가 자연스럽게 해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이리스에게는 높은 장벽을 넘는 것과 같았다. 신발을 신기는 데도 반나절이 걸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답 없는 질문을 끝없이 하며 지쳐 간다. 하지만 ‘비교는 부질없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며 강인함의 근원은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리스(위)와 단짝 고양이 툴라.
아이리스가 네 살때 그린 ‘바람속의꽃’. 제목은 엄마가 붙였다.
저자는 말한다.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폐를 가진 한 아이와 엄마의 성장일기이자 다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다. 지금도 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저자의 한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장애가 아닌 가능성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원제는 ‘Iris Grac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