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자
‘YS는 재산이 많은 사람은 공직에 안 쓴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아까운 사람을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안 쓴다고 하는 바람에 서너 번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 설득했다. “그 사람이 부정한 방법으로 번 것도 아니고 유산을 받아 재산이 많은 건데 안 쓰면 어떡합니까.”’ 그때마다 YS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권력이든 돈이든 둘 중 하나만 가져야 한다. 하나만 갖는 것도 대단한데 둘을 다 가져? 그건 과욕이다. 재산이 많으면 아무리 좋은 사람도 춥고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
‘진심’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당시 민정수석은 수석회의에서 민심 동향을 보고하면서 시중에서 하는 대통령에 대한 비아냥거림, 거의 욕설에 가까운 표현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면 YS는 무안해 팔짱을 끼고 천장을 쳐다봤다. 수석들도 당혹스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한번은 민정수석에게 말 좀 바꿔서 할 수 없느냐고 했더니 “나는 하지 말라고 하면 그냥 집에 갑니다”라고 하는 거다. 대통령에게 “저희가 듣기에도 섭섭한 말을 어떻게 다 참느냐”고 물으니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그럼 우짜노. 그게 그 사람 직책 아이가”라는 거다.’(당시 민정수석은 문종수 변호사였다.)
YS는 인사 원칙을 세우고 언로를 트고도 자식 비리와 외환위기를 막지 못했다. 측근들조차 인사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떨구고, 언로는 튜브의 바람 구멍보다 비좁은 현 정부가 제조업 붕괴와 외교적 고립, 저출산 고령화의 복합 위기를 돌파한다면 그게 기적이다.
무능은 어쩔 수 없다 치자. 도둑을 잡아 오랬더니 더 악랄한 도적 떼가 된 검찰과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천민자본가 재벌 총수들의 치부는 더 이상 몇몇 개인의 문제도, 한순간의 일탈도 아니다. 1% 특권층이 절제와 배려를 잃고 탐욕과 교만의 굿판을 벌일 때 보수정부는 공동체 복원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대중의 분노에 편승한 ‘트럼프주의’가 내년 대선의 핵심 변수가 되리라는 건 자명하다. ‘정치적 감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벌써 그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는) 자기 나라가 처한 현재의 위기상황과 대중의 불만을 소박한 대중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며 ‘한국의 트럼표(트럼프+홍준표)’를 꿈꾸고 있다.
트럼프주의의 특징은 진단은 맞을지 몰라도 해법이 공동체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내년 대선의 화두는 단연 격차 해소다. 격차 해소의 해법은 단순하다.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더 많이 나누는 것이다. 문제는 그걸 설득해낼 정치적 리더십과 용기다.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보수가 부자증세를, 진보가 서민증세를 추진하는 거다. 지금부터 분노에 편승해 세상을 갈라치기 할 정치꾼이 득세할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편 가르고, 부자(富者)와 서민의 갈등 구조를 극대화할 것이다. 증세란 불구덩이로 자신을 내던질 용기 있는 정치인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머리로는 정치인의 승리를 바라면서도 가슴은 정치꾼을 따르는 인지부조화의 여론이 대선판을 흔들 것이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분노를 터뜨리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해법에 동참할 것인가. 정치인의 리더십과 용기는 대중의 합리적 선택을 믿을 때 발현될 수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