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치유재단에 부는 역풍 높았던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 그래서 폐기하자는 말도 있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 순 없다 합의를 끝이라 보지 말고 보완해 시행해 가며 지지 얻는 게 재단이 가야 할 길 아니겠나
심규선 대기자
두 달 전 재단 준비위원이 되고 신문사 안팎에서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어려운 일을 맡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병원 응급실에서 김태현 이사장의 충혈된 눈과 당혹 허탈 분노가 교착하는 표정을 보며 ‘현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나는 재단 이사가 된 걸 후회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간 위안부 합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합의에는 분명히, 확실하게 만족하지 않는다. 한일의 당국자, 정치인, 오피니언리더, 기자 등을 만나면서 ‘불가능한 최선’을 추구하기보다 ‘가능한 차선’을 지지하게 됐다는 뜻이다.
할머니들과 시민단체가 오래전부터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공은 크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24년간 노력해 왔으니 24년 전에 요구한 대로 합의가 안 되면 수용이 어렵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 하나. 이번 합의와 재단 발족에 대해 할머니들이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은 잠시 접어주길 바란다. 실제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재단 간판을 내리고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겠다.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합의를 파기할 것인가. 파기한다면 영국의 브렉시트보다 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릴 것이다. 일본은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협상에 응한다 하더라도 시간만 끌 것이며, 합의를 한다고 해도 12·28합의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다만, 정부의 합의니까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거나, 할머니들의 여명이 얼마 안 남았으니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상황이 본질을 좌우하는 것 같아서다.
시행 과정을 통해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재단의 역할은 정부의 의무 중 최소한에 불과하다. 화해와 치유 말고도 ‘기억’ ‘위령’ ‘연구’ ‘교육’ 등이 꼭 필요하다. 역사기념관을 만들라는 요구도 많다. 정부 예산으로 할머니들이 말년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나중에 이곳을 보강해 기념관으로 만드는 방안을 진지하게 제안한다. 10억 엔을 오롯이 할머니들에게 쓸 수 있도록 재단 사무실 비용이나 인건비 등은 정부가 부담하라는 재단 이사들의 요구를 정부가 수용한 것은 고무적이다.
일본은 10억 엔과 소녀상 이전을 연계하지 말고, 10억 엔의 용처에 대해서도 너무 간섭하려 해선 안 된다. 총리와 주한 대사 등이 정상회담이나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길 바란다.
주말에 도쿄에서 서울특파원 출신 일본 기자들을 많이 만났다. 한 일본 기자는 내게 “출퇴근할 때 경찰이 보호를 해주느냐”고 물었다. 재단 발족일의 테러와 대학생들의 기자회견장 점거 모습이 일본에 널리 알려진 때문인 듯하다. 이런 질문은 또다시 받고 싶지 않다.
어제는 도쿄대에서 ‘한일 정부 합의 이후의 위안부 문제’ 심포지엄도 열렸다. 저명한 한일 학자와 언론인이 많이 참석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즉각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상대국보다는 자국의 협상 당국이나 정치, 사회 분위기에 더 비판적이라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대체로 보완해가며 시행을 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려면 합의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논의를 봉인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내가 재단 이사를 그만둔다 해도 만류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있는 동안에는 소신껏 발언하고, 행동하고 싶다. 비록 문제를 안고 ‘개문발차’를 했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는 누가 뭐래도 한일관계 3.0시대의 첫 시험대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