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갈 때면 책을 무척 신중하게 고릅니다. 짐도 싸기 전부터 어떤 책을 갖고 갈 건지, 그 책이 3박 4일짜리 여행에 적합한지 1박 2일짜리 여행에 적합한지 고민합니다. 가지고 간 책을 여행 도중에 다 읽어버리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니까요.”(‘책읽기의 쓸모’)
소설책 갖고 여행 떠나는 서양 풍습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이효석의 장편 ‘화분’(1939년)에 나온다. ‘피곤은 했어도 긴 날이어서 초저녁부터 침실로 들어가기도 멋쩍은 판에 객실에 불을 켜놓고 이곳저곳에 앉아 소설책에 정신을 팔기 시작했다. 다 각각 몇 권씩의 소설책들을 지니고 왔던 것이 다행이어서….’
바야흐로 휴가 여행의 절정기다. 작년에 모 호텔 예약 사이트가 사람들이 여행 중 호텔 침대에서 하는 행동을 조사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9%가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전 세계 여행객들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하위권은 멕시코 25%, 홍콩 27%였으며 스웨덴이 60%로 1위를 차지했고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순이었다. 한국인 여행객 대다수는 호텔에서 TV 시청이나 웹서핑을 즐긴다고 답했다.
“책 만 권을 읽어 신령스러운 경지와 비로소 통할 수 있고, 만 리를 여행하여 마침내 세상사를 제대로 따질 수 있으리.” 중국 북송시대 소동파의 말이다. 조선의 서거정(1420∼1488)도 독서와 여행을 함께 강조한다. “만 권 책을 읽어 근본을 튼튼히 하고, 세상을 유람하여 실천 능력을 기른 뒤에 비로소 큰일을 할 수 있다.” 갖고 가는 물건이 아니라 함께 가는 친구, 여행의 반려 책 한 권을 챙기자.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