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본 출신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 공동대표
일본에서도 인구가 지방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지방은 고령자만 남아 쇠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골을 부흥시키자는 운동이 국가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영화도 제작 과정을 통해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증폭시키고 고향 자연의 아름다움,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모으는 효과를 얻었다.
일본의 축제는 마을을 결속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지역별로 특색 있는 음악과 춤, 의상으로 1년 동안 축제 준비를 한다. 지금도 지역별로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데, 가마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축제가 없어지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나의 일본어 제자는 나에게 이모를 여러 명 소개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사람은 친척이 많은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했다. 식당에 가도 이모가 있고 그냥 이모가 있고 아는 이모가 있고 나중에야 친척이 아님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만나자마자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상대가 위인지 아래인지를 알아야 경어를 쓸 것인지, 편하게 대할 것인지 태도를 정할 수 있기에 그런 것 같다.
만나자마자 ‘형, 동생, 언니, 누나’라고 정하는 것도 특유한 일이다. 일본이나 유럽 쪽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여성에게는 결혼했는지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러워 본인이 말할 때까지 물어보지 않고 지내는 일도 많다. 10년 전 알게 된 동업자가 결혼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전철에서 옆 좌석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계단 앞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서 있을 때 젊은 남자가 들어다 주는 것도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아이들을 돌보기가 어려운 가정은 마을에서 함께 밥도 먹여 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고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도 안심하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고 자녀들도 방치되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공동체 모두가 가족처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정신적 교육적으로 지원해 주는 체제가 되면 범죄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열심히 일해도 아이들을 정서적 교육적으로 돌봐 주는 역할을 못 하면 자녀들은 공부도 못 하고 좋은 직장도 못 구하고 환경은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마을공동체 결속이 필요한 때다. 연세가 드신 분을 자신의 조부모, 부모처럼 생각하고 어느 아이들에게도 자식처럼 잘해 주고 마을 전체가 한 가족처럼 필요한 역할을 서로 해줄 때 한국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퇴직한 교사, 예술가, 상담사들이 재능기부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례를 많이 봐 왔다. 모든 지역에서 꾸준히 이뤄졌으면 한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라고 각자의 재능을 계발하고 사회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스승의 역할을 더불어 해줄 수 있는 사회 기구가 필요하다. 한국의 대가족주의가 한국뿐만 아니라 국가, 인종의 벽을 넘는 가치관으로 온 세계에 확산되면 좋겠다.